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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길위의청년학교

하얀 봉투 받으며

by 달그락달그락 2022. 9. 2.

막 헤어지려고 하는데 한성이가 하얀봉투를 내민다. “정읍에 달그락 준비하신다고 해서요. 너무 작지만 후원금이에요.” 고맙다고 했다. 정읍에서 달그락 활동 준비하는 선생님이 많이 좋아하실 거라고 전했다. 지금은 가족이 모두 인천에서 살고 있지만, 한성이 고향은 정읍이다. 달그락이 그곳에 만들어진다고 하니 더 애틋한 듯싶다.

 

 

사무실 들어와서 하얀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는데 생각이 많아진다.

 

한성이가 한 달 전쯤 전화 와서 자기 휴가라며 잠시 군산 오겠다고 했다. 가출청소년쉼터에서만 10년이 넘게 일하고 있는 친구(?). 연구소 두 분 샘과 함께 점심 식사하고 차 마시면서 옛날이야기 신나게 했다. 은빛 샘이 이 친구 동문이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대학에서 청소년과 관련한 과목을 강의한 지 오래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하면서 만났던 학생 중 청소년 현장에 들어와 긴 시간 관계하며 소통하는 친구들이 소수 있다. 한성이도 그 중 한 명이다.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특히 청소년에 대한 애틋한 정이 있는 친구였다.

 

 

벌써 10년도 전이다. 이 친구 또래 가르칠 때 무슨 열정이 있었는지 강의하면서 별일을 다 만들었다. 팀별 과제는 기관과 연계해서 프로젝트 기획하고 실제 실행까지 해서 발표하게 했다. 심지어 발표하는 날은 12일 자체 워크숍까지 하면서 내밀한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려고 했고, 현장에 선후배들에게 연락해서 팀별 멘토 형태로 연결해서 배우게 했다.

 

심지어 페이스북 초기에는 그룹을 활용해서 전문가들을 서울이건 미국이건 어디에 있건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지인들 초대해서 학생들 토론할 때 가이드 하며 돕도록 부탁까지 했었다. 외국에 안식년 맞은 어떤 교수님까지 페북 그룹에 초대할 정도였다. 열심히 공부 한 친구들은 서울에 관련 대학원에 추천했고, 취업처도 알아봐 주는 등 열심을 다했다. 겸임이건, 시간강사건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 친구들의 선생이었고 내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럴 때가 있었다. 학과에서는 내 강의는 까칠하다고 소문이 나서 공부하고 싶은 소수 학생만 수강하는 이상한(?) 과목이 되었다. 그때 만났던 학생 중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가 두 명이나 된다.

 

지금은? 모르겠다. 대학 강의에 대한 내 수준에 한계를 만났고, 여러 상황에 빠지면서 내가 너무 설레발 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지금도 강의하는 순간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중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하면서 현장에 후배들에게 지원하려고 했던 내용을 최대한 현장과 연결하고 끄집어내 만든 학교가 길위의청년학교.

 

이 바닥 들어 온 지가 강산이 두 번이 지나고도 몇 년이 지났는데 처음 만났던 활동가 선배들이 나에게 한 말이 있다. 후배들이 없다는 것. 돌이켜 보면 현장에 후배들을 어떻게 연이 되어 함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내 안에서 알게 된 것은 단순했다. 우리가 꿈꾸는 현장에서 함께 할 사람들의 장을 만들어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이며 체계적으로 함께 한다는 거다. 그 정점이 새로운 달그락을 만들 수도 있고, 어떠한 현장이건 함께 하면서 연대하며 꾸준한 현장의 선후배로 함께 하는 일이다.

 

길위의청년학교 2022-2학기 개강

 

길청 어제 2학기 개강 OT 했다. 2학기 일정 안내하니 했다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일단 좋았다. 내년 1월에는 제주도에 수학여행도 간다. 배움여행이고 세미나도 열고 매주 목요일은 연구회도 하며, 팀별 프로젝트도 만들어 안내하기로 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이상과 철학, 가치에 따라 삶이 바뀌어 가는 것을 안다. 한성이를 오랜만에 만나고 하얀 봉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져. 이번 주 한 없이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씩 활기를 띠는 것만 같다. 금요일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