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임으로 있는 대학에서 2학기 강의 계획서 입력하다가 지난 학기 강의평가 보게 되었다. 5점 만점인데 평균 5점이라고 써 있다. 강의 평가 만점이라? 가끔 신기한 일이 있다.
저녁에 책상 옆에 놓여 있는 상장을 보게 됐다. 막내(초등 6년)가 상을 받았다고 했다. 열어 보니 장관상이다. 와우. “넌 상 받은 이야기도 안 하냐?”고 물으니 별 대수롭지 않게 과학의 날인가를 맞아서 과학 시험을 봤는데 상을 주더란다. 과학의 날에 무슨 경시대회 비슷한 시험을 본 모양이다. 벌써 몇 달 지난 것 같은데 이제야 상장 확인했다. 한학년에 한반 또는 두반 있는 작은 학교 다니는 아이.
내가 중학교 입학해서 첫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중간에서 오락가락했다. 63명 반에서 30등 내외. 나는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다. 돌이켜 보니 과외도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국민학교 내내 친구들하고 산으로 운동장으로 놀러만 다녔다.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중학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시험을 봤는데 중간 이상의 등수를 갔다. 그래봐야 서너 등 더 오른 건데 엄마가 공부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많아졌다. 뭐 좋은 일인가?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고 그저 찍어서 운 좋게 맞은 성적 같은데. 이렇게 좋아할 일인가?
강의평가에 일희일비 했을 때가 있었다. 가르치는 내용은 생각도 안 하고 강의평은 무조건 좋아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이 있었다. 2013년부터 대학과 대학원 강의를 했으니 벌써 20여 년이나 강의 경력이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사,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복지사 등 청소년과 관련된 대부분의 전문직 대상으로 강의했다. 현장의 전문직들 만나면서도 그들에게 내가 전달하는 내용과는 별개로 강의평가는 좋아야 했다. 가끔 죽을 쓰기도 했지만, 운이 좋게도 여러 곳에서 좋아해 주기도 했다.
시간이 가면서 어떻게 하면 평가가 잘 나오는지 대강 알게 되었다. 그 평가 결과가 강의의 질과 내용 전달력과는 또 다른 차원의 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완전히 옳고 그런 것도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강의는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그 순간에 만나는 수강생들에게 내가 못되 먹은 선생으로 보일지라도 전달할 내용은 똑바로 전달해야 한다는 목적을 설정했다.
평가 중요하지만 거기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수강생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게 나의 확고한 목적이 되었다. 청소년활동이나 복지, 상담 분야에서 일해야 할, 어쩌면 현장에 내 후배들이기에 더 열심을 내는지도 모르겠다.
막내가 받은 상이 장관상인데 이 친구는 이 무게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학교에서 받은 그저 그런 상으로 치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험 한두 번으로 받은 상으로 그 노력이 크지 않은 것을 아이가 아는 것 같다. 그런데 생일날 상도 아닌 편지 글 꼬깃꼬깃 써준 글에는 감동하고 잘 모아 놓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상이라는 것? 평가라는 것?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자신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그런 것이고, 그 기준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 평가를 받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어떻게 그 일을 대했고 진정성 가지고 접근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평가 받기 이전에 그 이상의 가치는 이미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을까?
평가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평가의 내용에 반드시 다양한 반응이 숨어 있다. 다만 과정에 어떠한 노력과 고민과 내용을 채우려고 했는지 그 과정이 진실이라고 여긴다. 장관상이 거실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 생각이 많으니 또 머리가 커짐. 이제그만. 오늘은 회의만 했는데도 피곤타. 회의주의자...
'연구 및 관점 > 강의 및 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소년자치활동의 관점 및 사례: 달그락 교사 연수 중 (10) | 2022.08.11 |
---|---|
자원봉사 본질을 추구하는 이들, 봉사라고 안해? (5) | 2022.08.05 |
인간다운 삶을 살아 내는 활동, 인권 (0) | 2022.07.27 |
힘들어 뒤질 뻔 (0) | 2022.06.30 |
청소년공간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0) | 2022.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