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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니트를 벗었다.

by 달그락달그락 2022. 4. 22.

니트를 벗었다. 새해 처음으로 셔츠만 입고 웃옷을 걸쳤다. 하늘을 보니 봄이 생경하게 나를 맞는다. 잠을 자고 있었는데 머리는 온통 사무실 일로 뒤 범벅이었다. 부스스한 머리 추스르고 일어나면서 몸뚱이 마디 때문인지 작은 신음이 나온다. 나이 먹고 있는 신호다. 이제 벌떡 일어나긴 글렀다. 와이셔츠가 베란다에 걸려 있어서 입고 나왔다.

 

 

카페 들러 커피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거울을 봤다. 어떤 아저씨(?) 한 명이 서서 나를 멍하게 보고 있다. 세상 근심·걱정 다 가진 모습이다. 신기해서 사진 남겼다. 거울 아래 내가 사랑했던 메릴린 먼로가 날 보고 환하게 웃어 주고 있다. 이 친구의 밝은 웃음을 보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만나는 이들에게 먼로처럼 밝은 웃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달그락에 와서 열 일을 하는 민성이에게 장난 걸다가 진로 이야기 나누었다. 민성이는 대학은 생각이 없고 소방관을 바로 되고 싶어 한다. 군대는 특전사나 707 같은 군대도 좋다고 했다. 내 군대 동기도 소방관 하고 있는데 잘한다고 했다.

 

어제 늦은 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군대 후임이라면서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를 않아서 머리를 자꾸 굴렸다. 그 친구는 내가 해 준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럴 줄 알았다면서 좋은 일 한다고 했다. 다른 선임과 다르게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주었다면서 옛날 이야기해 주었다.

 

기억나지 않았지만, 내가 훈련하다가 떨어져 병원 후송될 때도 내 옆에 있었다고 했다. 이 친구의 목소리 들으면서 오래전 생각이 났다. 내 전화번호는 어찌 알았냐고 하니 내 군대 동기 중 군전역 하고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받았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다. 한 사람의 삶은 모든 존재와 얽혀 있음을 안다. 그 실타래보다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의 끈 어디를 풀고 헤치고 끊어 내는 과정이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커피 기다리다가 이상한 아저씨(?) 거울에서 만난 후 이런 글을 끄적이는 것. 우리네 인생이다. #22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