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7년이 기적이었다.

by 달그락달그락 2021. 12. 30.

달그락 1년여의 과정을 마치고 달달파티가 진행됐다. 청소년자치연구소,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 길위의청년학교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청년들이 일년동안 자신들의 변화와 그들이 변화 시킨 지역사회를 안내하고 서로간 응원하고 축하하는 자리다. 위원, 이사, 자원활동가, 후원자 등이 모두 모인다. 그 가운데 발표 시간이 있어서 몇자 적어서 안내한 글이다. 감사하고 감동했다. 7년여의 시간이 기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기적이다. 모두가 함께 하는 사람들 때문임을 안다. 그들이 기적이다. 

 

 

#

29살의 크리스마스를 잠깐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29살이라고 하고 다니는데요. 서른살 부터는 아저씨 소리 듣는다고 해서 청년으로 평생 살다가 죽고 싶어 그러거든요. 여든이건 아흔이건 전 계속 29살이라는 거죠.

 

주민등록상에 제 나이가 29살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그 때에 눈도 많이 왔어요. 하루 종일 한 일이 청소년 관련한 프로젝트 한 거 마감치고 결산하느라 영수증 붙이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혼자 이걸 계속하고 있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저녁 시간이 되면서 자괴감이 밀려 왔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 야외 예배드린다고 나오라고 해서 저녁도 거른 채 늦은 밤 야외 찬양예배 드리는 곳으로 나갔습니다. 그 곳이 바로 이성당 앞 쪽에 공터 였어요. 건너에 조그만 공간이 있었거든요. 찬양하시는 분이 저에게 허우대 멀쩡하니 현수막 붙잡고 있으라고 해서 그거 붙잡고 있었어요.

 

하늘을 보는데 눈은 오고 연인들은 지나가고 있었어요. 제 뒤에서 찬양은 계속 나오고 있었지요. 하늘에 눈이 그렇게 슬퍼 보였습니다.

 

청년의 때에 불안함에 쪄들어 있을 때였어요. 가진 것도 없었고 미래도 보이지 않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몰랐어요. 부모님 부자도 아니었고요. 그 때에는 오로지 제 앞에 있는 청소년들이 좋았어요. 청소년들과 활동을 하면 그런 불안함이 모두 잊어질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눈이 너무 아름다운데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전에 다니던 꽤 괜찮은 직장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Y에서 청소년들 만나고 있을 때였거든요. 월급은 전 직장에 비해서 너무 낮은 수준이었어요. 월급은 그렇다 치고 가장 힘든 것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거였어요. 당시 교재 하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조금 되었을 때 였어요 그 아픔도 함께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청년들 꾸준히 만나면서 그들이 처음으로 사회 나갈 때의 그 불안감을 조금은 이해를 합니다. 앞날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불안하기만 한 그 시간 말입니다.

 

어찌 됐건 그러한 시간이 많이 지났고 현재가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떤 확실함이 있을까?

아니.. 바꾸어 말해서 미래에 대한 확신때문에 이런 활동을 할까?

 

어제 3시까지 오늘 무슨 말을 할까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때가 떠오르는 거예요. 29살 그 때. 정말 막연하고 불안하기만 하던 그 때.

 

지금은 무엇이 많이 바뀌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불안함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 들지 않았고, 일에 대한 강박 또한 여전하고요. 지금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모두 없어질 것 같은 불안과 강박은 그대로인 거죠.

 

그래도 20, 30대 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항상 옆에 있었고 이들을 매일 만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질 것 같은 강박, 거기에 이들을 돕기 위해서 함께 만난 이웃들의 모임도 계속해서 조직했는데 이들도 없어질 것 같은 강박. 청소년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나 네트워크에 참여하면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고 노력했던 그 강박.

 

지금은 무엇이 많이 변했을까?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는데, 또 어쩌면 너무나 많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중에 가장 크게 변한 것은 활동하면서 뜻과 이상, 가치 철학이 명확해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막연히 좋은 일 하기 위해서, 신앙적 목적 때문에 청소년을 만났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사회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의 주체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 활동을 하는 과정에 명확한 비전이 존재하고 그 비전 따라 가다 보면 불안이 많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여년 조금 넘게 일하던 기관에서 사직하고 광야라고 표현하던 허허벌판에 맨몸으로 나와서 독립하고 3년여를 혼자서 무허가 개인연구소 하다가 다시 지역에 돌아와서 달그락을 시작한지가 7년이 되었습니다.

 

그 간에 제가 깨달은 것 중 가장 축복된 일은 명확해 지는 비전과 함께 여기 함께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달그락과 길청의 청소년, 청년 분들과 선생님들, 위원회, 자원활동가와 우리의 이웃과 후원자 분들. 모두 사랑하는 분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었어요. 존재 자체로 감사하고 감동하는 분들이 돈과 시간을 나누면서 함께 한다는 것이었어요.

 

시간이 가면서 알게 되었죠. 모든 일에는 그 만큼의 가치와, 그 만큼의 철학과, 그만큼의 이상이 존재하고, 그 일이 소중하고 잘 되게 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그 이상과 가치, 철학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요.

 

우리 청소년자치연구소의 활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2015년 처음 이 공간 마련할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바로 이 곳이었거든요. ppt 보이세요(사진). 그런데 그 공간이 7년여가 흘렀고 여기 안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세요. 연구소와 달그락을 통해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요. 기적의 핵심은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신 달그락과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지역 활동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2014년 준비하던 겨울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하는 김현수 목사님의 제안으로 연구소가 들꽃청소년세상과 결합되면서 힘을 받기는 했지만 법인도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거든요. 그 때에 법인을 통해 후원자 분이 지원해 주셨고 하늘에서 도왔는지 저에게 연락 주신 어떤 분 덕에 꽤 큰 연구비와 사업비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를 믿는 오국장과 미나샘, 경민샘, 지금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병옥이가 모두였죠. 그러면서 만나게 된 우리 이강휴 이사장님과 이후 이진우, 김선녀 위원장님 등과 저희 위원님들. 후원자님들이 한분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이나 활동, 지역의 변화, 청소년의 변화는 이미 제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눈으로 몸으로 확인했고 있습니다.

 

내년도에는 저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움직이려고 합니다.

 

달그락 2호점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3호도 4호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려고 꿈을 꾸고 있습니다. ‘길위의청년학교에 청년들 또한 저희 달그락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작지만 어느 지역에서건 저희 군산의 이 달그락달그락과 같은 기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소중한 일들이 만들어 지게 될 것입니다.

 

저나 저희 선생님들이 만들어 가는 게 아닙니다. 여기 계신 우리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중심이 되고 위원님들과 후원자 자원활동가들 분들 중심으로 함께 만들어 갑니다.

 

그 기적 같은 일들에 함께 하고

그 모험에 함께 하는 여러분들이 계시고

돈과 시간을 나누고 관계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저는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내년도 2022년도에서 또 다른 기적을 만들 거라 믿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함께 나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

2021년 제7회 달달파티 방송영상 https://youtu.be/uj2mkaGr9Z0

 

 

#

관련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