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강의에서 PPT는 가능하면 지양 하는 게 맞다. 세미나, 토론회, 포럼의 발표에서는 PPT나 프레지가 중요한 도구로서 역할을 하지만, 대학원이나 학부의 온라인을 통한 한 학기 또는 일 년 단위의 강의에서는 교재와 판서, 자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학생들 집중력 차원에서는 더 좋아 보인다. 이번 학기 결론이다.
동영상 강의에 필요한 것은 딱 세 가지다. ‘강의교재’와 ‘분필(전자칠판)’과 관련 기사나 동영상 등 관련 ‘자료’다. 입시학원 유명 일타 강사들이 왜 분필 하나만 가지고 강의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학기 학생들 얼굴을 시험장(사진)에서 처음 봤다. 매일 퇴근 후 늦은 시간 촬영해서 보낸 강의 영상으로 만났다. 강의하러 두 시간 내외의 시간을 차에서 보내지 않아도 되니 코로나19 이후 나에게 시간은 더 많아졌다.
매 시간마다 강의에 대한 성찰글 써서 과제로 올리게 했다. 중간 과제로 현장의 청소년지도자, 활동가들을 실제 만나서 인터뷰하게 하고 보고서 제출해야 했고, 각 장마다 토론글 올리고 참여자 모두가 자발적으로 토론하게 하고, 그 내용을 모두 모아서 요약하게 했다.
한학기가 갔다. 기말고사 마치고 관련해서 강의 평가서 살피는데 대부분 호의적이다.
지금까지 내 강의 평가는 극단적이다. 어떤 때는 98~99점으로 대학 최고를 받았다가 어떤 때는 83점 내외로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의 평도 극단적으로 나뉜다. 정말 훌륭한 선생이라고 추앙하는 한 부류, 만나면 피하고 싶은 사람(놈)이라는 한 부류. 옳고 그름이 명확했다. 나는 이게 좋았다.
겸임교수라는 타이틀을 학교에서는 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시간강사다. 그럼에도 가르쳤던 학생 중에 추천해서 서울의 대학원에 입학시키기도 했고, 열심히 하는 학생은 취업도 알선해 주고,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까지 있다.
학생들이 긍정적인 부분으로 인식 한 것은 성찰 글과 토론에 대한 내용이 많았고 특히 강의에서 PPT를 사용하지 않고 책을 중심으로 판서(줌 칠판 활용)했던 점과 기사와 관련 자료를 적절히 활용했던 점을 좋아했다.
필기시험 점수는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성찰 글은 코로나19 이전보다도 훨씬 수준 있는 글이 많았다. 보완해야 할 점으로 현장에서 토론하고 바로 질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몇 명은 이유는 없지만 직접 강의실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사자인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감정이 섞이지 않았다. 좋은 점으로는 관계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강의 ‘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나에게는 코로나19가 몸으로 알게 해 준 중요한 내용이다.
강의 스타일 상 가능하면 참여자들의 관계와 소통을 중시하면서 반드시 학생들과의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 못한 것도 지적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가끔은 목소리도 높아지고 어떻게든 책이라도 읽히고자 짜증까지 내는 내 모습을 기억한다.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자녀가 강의실 안에 앉아서 딴 짓 한다고 생각하면 힘겨운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인지 한번 만나고 2년 내외를 개설한 강의를 모두 따라 다니면서 수강한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한번 만나고 그만 두는 학생들도 있었다. 문제는 온라인 강의 영상에는 감정은 배제한 채 엄청(?) 온화한 얼굴로 비추어 진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오프에서 매번 30명을 넘기지 못한 수강생들이 온라인 강의 이후에 수강 만원을 넘어 선다는 것.
깨달은 것이 있다. 학생을 위해서 조금은 강하게 어필하고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이해해 준다면 더 없는 좋은 일이 되겠지만, 생전 만나보지 못했던 선생이 투박하게 권면하고 공격적인 질문을 한다면 학생에게는 폭력적인 모습으로도 비추어 질 수 있다.
이번 학기 지나면서 전체적인 내용을 시스템으로 정리해 보니 성찰글 차원에서 전체적인 과제 수행을 살피면 이전에 오프라인 수준 이상의 성과는 있었다.
또 한 가지 부정적인 부분은 학생들의 완전한 자발성에 기인해서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권면이나 제안 등 소통이 어려운 점이다. 내년도는 오프라인으로 모두 돌릴 것 같은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건 한학기가 갔다.
대학, 대학원 강의는 오랜 시간 했다. 출강하면서 얻은 게 많다. 내가 전공 책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대학교재를 쓸 수 있게 만들어 준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대 학생들과의 깊은 관계와 소통이었다. 그들이 그 시대에 고민하는 지점과 희망을 가장 크게 전달해 주고 알려 주었다. 내가 만년 29세로 멈추어 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연구소와 달그락, 길청의 일들이 많아지면서 대학, 대학원 강의는 대부분 그만 두고 한 곳만 나가고 있다. 이곳도 곧 접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련다. 오늘 학생들의 시험 이후 돌아가는 그 모습이 조금은 애잔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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