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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아는 게 아는 게 아니다

by 달그락달그락 2021. 12. 6.

 

몇 년 전 도내 모방송국 시사프로그램에서 참여 요청이 왔다. 지역정치권 관련해서 선거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당시 지역에 시민단체 연대한 조직의 운영위원장으로 실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시민단체 연대에서 어렵게 만들었던 정책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방송이 시작 된 후 알았다. 내 판단 착오였다. 프로그램 특성상 사회자는 정책에 대한 내용을 듣기 보다는 지역 정가에 여러 민감한 문제를 질문에 올렸다. 질문 받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책 제안이나 연대 활동 과정은 그리 크게 이야기 하지 못했고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평부터 알지 못하는 정당 내 권력관계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곤욕이었다.

 

청소년정책이나 청년담론 등 내 전공이고 현장이 있는 내용이야 이야기할 게 너무 많았지만 지역 정치판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도 할 수 없었다.

 

최근에 서울의 모 여성단체에서 연락이 왔는데 방송과 유튜브 등 미디어에 양성평등과 관련된 주제로 모니터를 하는 사업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 잘 모르는 분야라고 말씀 드렸는데도 청소년에 대한 내용이 포함 되어 있어서 꼭 부탁 한다고 했다.

 

1시간여 성평등과 관련된 전문가 한분과 줌(zoom)으로 제언만 해 주면 된다고 했다. 전날 자료도 찾아보고 요약해 보았으나 당일 자문회의에서 내 대답은 하늘을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역시 다른 차원이었다.

 

어제 오늘 어떤 여성에 대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처음에는 옹호하는 글을 썼고 하루가 지나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언론 기사를 본 후에 다른 관점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성폭력 때문에 아이를 임신했다는 기사를 읽고서 내가 지금 무슨 근거로 이런 글을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모두 내렸다.

 

그 분이 정치를 하겠다고 대선 판에 뛰어 든 이상 평가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옹호나 비판 그 어떤 관점이 합리적일 수 있으려면 사실을 알아야 했다. 우리는 사실을 알고 있나?

 

갑자기 채현국 선생님 인터뷰 글이 떠올라 찾아 봤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그렇다. 하물며 어떤 이론이나 현장에 전문성을 가진 일도 아니고 철저히 개인사에 얽혀져 있는 문제를 모두가 자기 진영논리와 윤리관으로 난도질 하고 있었다.

 

내가 안다고 자부하고 있는 연구영역이나 현장의 전문성도 모두 정답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물며 전문적인 분야도 아닌데 아는 척 하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방송토론회나 자문회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돌아보니 블로그나 SNS의 글, 온갖 회의나 모임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를 돌아보니 내가 정말 알아서 이야기하는 것이었을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안다는 것도 모르는 내용이 너무나 많은 시대다. 하물면 개인사를 누가 안다고 재단하고 비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살다보니 한 가지는 알겠다. 내가 아는 게 아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이것만은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