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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호그와트 교복과 지팡이 : 막내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싶어서

by 달그락달그락 2021. 11. 13.

어린 시절 아버지는 자칭 시인이셨다. 사업 망하시고는 집에서 술과 함께 시 쓰신다면서 방콕하시면서 지내셨고, 어머니는 새벽부터 회사에서 일하셨다. 언제부터인가 나와 동생들의 생일은 잊혀졌다. 어느 때 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동생들 누구도 생일과 같은 기념일은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기념일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생일, 연인과의 100일 등 대부분의 기념일에 무신경했다. 그 의미를 찾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재미가 없었다. 이런저런 기념일에 나누는 이야기에 괜히 손발만 오그라들었다.

 

아이를 조금 늦게 낳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막내가 초딩이 되었다. 몇 년 전인가 생일에 만원 조금 넘는 케이크에 촛불 꽃아 놓고 가족이 모두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 순간 아이 얼굴을 잠깐 보았는데 세상에나... 너무나 맑고 행복해 하는 막내의 얼굴이 보였다. 그 때 아이의 그 충만한 행복감에 젖은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아이들이 매번 저렇게 행복해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막내가 초딩 5학년이 되었다.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원하는 거 사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어서 언제부터인가 선물을 물었다. 해리포터에 꽂혀서인지 전편을 몇 번씩 반복해서 보더니 자신은 헤리포터 덕후란다. 이번 해 선물은 해리포터 비밀지도, , 망토, 지팡이 등 몸에 걸치는 도구와 옷을 모두 선물해 달라고 졸랐다. 가격으로 치면 몇 천원에 1, 2만원 하는 것들로 모두 계산해 보니 7만원 조금 넘었다.

 

이전 같으면 왜 이런 것을 갖고 싶어야 하는지 이야기 나누어 보자고 하고, 구입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설득해 보라고도 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았을 텐데 아이가 보내는 주소 들어가서 모두 인터넷으로 결재했다.

 

이유? 행복해 하는 막내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서울 일정 마치고 귀가하는데 메시지로 사진이 날라 왔다. 오후에 배달이 되었는지 호그와트에 교복부터 지팡이까지 차려 입고 사진 찍어 보내줬다. 너무 좋아 하는 아이 모습 보니 좋다.

 

오전에 서울에 가서 오후 내내 서울 사람들 만났고, 저녁에 네팔 청년들 만나서 프로젝트 모임 했고, 연구소에 군산 샘들과 잠시 이야기 나누었고, 귀가해서 지금은 전국에 몇 분과 온라인 글 모임 중에 끄적이는 글이다. 오늘도 많은 이들 만났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슴 한켠에 있다. 만나는 이들 때문에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이의 그 행복해 하는 모습이 생일 때만이 아니고 언제나 시시때때로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우리 막내가 케익 앞에서 지었던 그 충만하고 행복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호그와트 교복과 지팡이를 아무런 이유 없이 나의 벗들에게 나눌 수 있는 충만한 마음이 필요하다. 삶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길었고 많은 이들을 만났고 가슴은 아직도 콩닥콩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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