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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가족신화라는 일반화의 오류

by 달그락달그락 2021. 2. 19.

어린 시절 명절이 힘겨웠다. 자칭 시인이셨던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취해 계셨고 그런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님 등 조상님 산소를 찾아가는 것도 곤욕이었다. 제사도 많았다.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고 고모님이 여섯 분 계셨다. 나는 그 집에 큰 아들이었고 어르신들은 나를 보면 항상 우리 장손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제삿날이면 너무 바쁘셨다. 고모님이 많이 계셨지만 대부분의 일은 어머님 혼자서 하셨다.

 

제사 때마다 많은 친척들이 오셨는데 조용하게 지나간 적이 별로 없었다. 우리 부모님 빼고 대부분이 무슨 사업이나 돈으로 얽혀 있었던 것 같다. 고모님들과 사촌 간에 연결된 여러 일들이 제사 때 모두 모이면 어김없이 어른들 몇 분의 분쟁으로 사달이 났다. 그럼에도 친지들이 매번 빠지지 않고 모이는 게 신기했다.

 

그 당시 친척들이 많이 모였을 때 창피함이 있었다. 이웃에게 큰소리가 전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있었고, 다른 가족은 모두 화목하고 따뜻하며 사랑이 넘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우리 가족만 이렇게 모이면 얼굴을 붉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살면서 알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가족 문제로 아픔을 갖고 있다. 특히 청소년문제에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대부분이 가족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 명절이 지났다. 이번 명절은 코로나19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싸움이나 소란 없이 조용히 지나간 가족이 많을 거다.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 붙는 따뜻하고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혈연의 공동체라는 '가족신화'는 깨져야 옳다.

 

수많은 이들이 가족주의 안에서 힘겨워하고 막연히 가족은 그러한 사랑의 공동체적 관계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모나 형제자매로 인해 상처 받아 아프고 힘들어도 가족은 화목해야 하기에 참고 견뎌야 한다는 착각을 한다. 가족 간의 관계로 인한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아픔은 넘쳐 난다. 가족은 화목하고 따뜻할 거라는 가족신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더욱 큰 상처를 받는다.

 

내 친구들, 내 주변에 많은 이들이 가족과의 관계에 따른 아픔을 갖고 있다. 아니 솔직해 지자. 우리 모두가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눈물 글썽이며 갈등을 감동적으로 해결하고 무조건 화목하기만 한 가족의 모습과 현실은 괴리가 커도 너무 크다는 것을 안다. 가족 안에서 화목함, 따뜻함, 사랑이 넘치는 그런 모습들은 지향해야 할 가족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가족의 일반화는 오류다. 아주 큰 오류다. 모두를 힘들게 할 뿐이다.

 

가족의 첫 구성은 남남에서 시작한다. 그 남남이 일이년도 아니고 수십 년 동안 어떻게 매번 화목하고 사랑이 넘칠 수가 있는가?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갈등은 커지기 마련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가슴 열어서 좋고 싫은 게 무엇인지 서로 간 아픔이 무엇인지 보려는 노력이 있을 때 가족은 정말 가족다워진다..

 

또한 반드시 이성 간의 결혼이라는 관계뿐만 아니라 매우 폭넓고 다양한 존재로의 관계도 가족일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이성이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살면 가족인가? 입양까지 해서 부부가 있고 아이들이 있어야 가정인가?

 

인터넷에 들어가서 클릭 두어 번 하면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그 관계가 얼마나 이상한 곳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 가족과 내가 삶을 살아 내고 있는 가족이라는 공간의 관계를 들여다 볼 일이다. 가족신화는 버려야 옳다. 그 때부터 가족처럼 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가족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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