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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취함과 누리는 것

by 달그락달그락 2021. 2. 2.

 

취한다는 것, 곧 갖(얻)는 것은 곧잘 돈, 권력,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사람은 이성이든 동성이던 자신의 쾌락적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누린다는 것은 돈, 권력, 이성 등을 취하려기 보다는 그 순간의 경험을 가지면서 즐기는데 초점이 있다고 보인다. 돈이나 권력이 없어도 자연과 함께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삶을 욕망하지 않고 누리는데 초점이 있다.

 

두 가지 다 자기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이는 전자가 자본주의 사회에 폐해라고 주장하고 후자는 자연주의 삶이 어쩌고 하면서 좋다고 여기는 이들 있지만 내 보기에 양비론으로 나누는 것은 썩 좋은 반응은 아니다.

 

돈이나 권력, 사람을 취하는 게 문제인가? 일단 가진 것으로 누리는 일이 좋은 것인가?

 

만족에 차이가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는데 전자는 만족을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모으고 취하려고만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이 사람들 모으는 것 자체에 만족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과정 자체(범죄가 아닌 경우)가 나쁘다고만 주장할 수 있을까?

 

후자로 누리는 사람들은 취하지 않고 누릴게 있다는 것인가? 일단 권력이나 돈에 집중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만히 누리면서 산다는 것이다. 안빈낙도의 삶을 지향하면서 가난한 삶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만들어 간다는 이들도 있다. 좋은 건가? 사회적으로 나쁜 건가?

 

지향 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양태를 만드니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여길 수는 없다.

 

다만 부와 권력을 축척하는 게 무조건 나쁠 수 없고, 누리는 삶이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삶을 만족해하면서 세상 모두 다 가진 양 책임지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누리는 삶이라는 표현도 어딘가 버겁다. 물론 돈과 권력에 집중하면서 사회를 힘겹게 하는 이들도 있고, 안빈낙도의 삶을 살면서 자연과 벗하면 귀한 일들 행하는 분들도 있다.

 

사람다운 삶, 옳은 삶이라는 경계는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알겠다.

 

우리가 항상 삶의 경계 그 어디쯤 매달려 있고 고민하고 있고 생각하고 선택한다. 그 선택의 이면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 가슴에서 나오는 그 내면의 소리를 반발하면서 우기지도 말 것이다. 어쩌면 그 내면에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따르는 게 답으로 보인다. 세상에 객관적이라는 논리는 존재하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내 안의 내면에서 나오는 선택은 답이다.

 

우리 내면의 소리, 정신적 가치, 영적 가치에 집중하면서 부도, 권력도 또는 일단 누리는 삶도 내 안의 내면에서의 선택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내면을 볼 일이다.

 

목구멍을 열어 거울을 비추니 편도가 부었구나. 코도 막힌 것 같고. 이불 덮고 잤어야 했는데. 내면을 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