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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꿈은 포기하라고 꾸는 것

by 달그락달그락 2020. 11. 12.

많은 이들이 청소년에게 꿈을 가지라고 한다. 꿈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꿈이 무얼까?

 

 

꿈꾸는 공간은 침실이다. 그 공간에 들어가면 아늑하며 완전한 나만의 환경이 된다. 꿈을 꾼다는 것은 나만의 나를 위한 내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다. 문제는 침실에서 꿈은 깨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꿈을 꾸기를 원하고 삶이 꿈과 같이 되기를 원하지만 침실에서의 꿈은 언제든 반드시 깨어야 한다.

 

“꿈을 포기해도 괜찮다. 다만, 그 선택이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나 자신 스스로가 내린 판단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주도적인 생활을 하는 나의 오늘이 내일의 나를 더 밝게 빛내 줄 것이다.”

 

 이 글 현재 편집 중인 들꽃 법인의 청소년들과 선생님들 글 중에 한 부분이다.

 

꿈을 포기해도 괜찮다는 이 문장 하나.

 

청소년이 꿈을 포기하면 큰 일 날 것처럼 이야기 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 보기에 꿈은 포기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꿈을 꾸다가 언제 깰 것인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꿈을 꾸는 일도, 깨는 일도 그 선택을 누군가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삶의 진로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요체다.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은 그 이면에 수많은 고민과 성찰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모른 채 타자나 어떤 환경에 의해서 갖게 되어 어느 순간 어찌할 수 없이 잠에서 깨는 꿈은 깨어 있는 삶에서의 꿈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꿈을 자신의 힘으로 포기하는 순간이 올바른 진로를 선택하는 시작이 된다. 내가 가진 꿈을 자력으로 깨는 그 순간이 청소년이 선택한 가장 이상적인 현실의 꿈을 꾸게 된다는 말이다.

 

포기한 꿈 이후에 선택한 그 어떤 일은 침실 안에서만 존재하는 망상이 아니다. 현실로서 나타나는 나의 일이 된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갈 수 있는 내 길이라는 말이다.

 

청소년, 청년에게만 대입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네 삶에서 40대가 되어도 5, 60대가 되어도 우리 모두는 삶의 진로에 서 있기 마련이다. 그 선 자리에서 과감히 누군가에 의한 꿈을 포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처럼 멋진 일이 있을까? 이상을 붙잡고 꿈을 꾸는 게 아닌 현실에서 이루어가면서 해석하는 것 또한 얼마나 멋진가?

 

꿈이란 깨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1시경에 눈을 떠서 하루 종일 노트북 보고 있자니 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