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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코로나19를 대하는 사이비와 교회의 차이

by 달그락달그락 2020. 3. 22.

 

코로나19 창궐하는 가운데에 아직도 20% 내외의 교회가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기사. 세상의 문제나 병은 교회 공동체를 건들지 못한다는 이들까지 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물에 빠졌을 때 수영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익사해야 하는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지 말고 '이건 하나님의 심판이야. 저절로 나을 때까지 참고 버텨야 해'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배고프고 목마를 때 왜 당신은 먹고 마시는가?"

 

누구의 질문인지 아나? 그 유명한 루터의 질문이다.

 

"실제로 비텐베르크에 흑사병이 덮쳤을 때 당시 작센의 영주였던 선제후 요한은 루터를 비롯한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들에게 즉시 인근도시인 예나로 피하라고 명했지만, 루터와 동료였던 요하네스 부겐하겐은 도시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서 성도들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양떼를 돌볼 다른 목회자가 있다면 굳이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위험지역을 떠나는 것도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고 조언 하였습니다." - 장로회신학대학교 박경수 교수의 '흑사병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태도'에서

 

무슨 말이냐고?

 

중세 흑사병이 돌 때 교회예배와 모여 있을 게 아닌 얼른 병이 돌지 않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호소했다는 말이다. 심지어 루터는 병든 자를 최선을 다해 돌보았지만 이들을 돌볼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도 그 지역을 떠났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대구경북에 힘겨워 하는 이들의 곁에서 돌봄을 하는 의료진들과 봉사자들 중에 기독교인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도 그렇고 이 부분은 확실하지. 문제는 이들을 돕기는커녕 교회건물에서 더 많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게 옳다고 믿는 일이다.

 

코로나19가 없는 지역사회거나 한두 명 발생한 것 때문에 사회생활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서너 명 또는 10여명 소소하게 모여 대화하고 이야기 하는 것까지 뭐라 할 수 없다. 모임도 있을 수 있고 식사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수백 명씩 또는 수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일들은 고민이 앞선다. 그것도 내가 믿는 신앙의 이유로 그런다는 게 나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최근 사이비 종교가 비난 받는 이유가 많지만... 그 중 자꾸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열려고 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사이비와 기성교회의 차이를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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