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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골든아워 - 판을 바꾸려는 사람들

by 달그락달그락 2020. 2. 15.

 

토요일이다. 그제 잠을 많이 못 잤다. 어제 일정이 조금 많았는데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이 TV 본다고 내 방 침대에서 뒹구는 바람에 많이 피곤했다. 작은 TV 하나가 내 방에 있고 아이들은 금요일 밤에만 나혼자 산다라는 방송만 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아내 사이에 방송 보는 그런 룰이 정해 졌다.

 

어제도 늦은 시간 잠들었고 토요일 오전 늦잠을 잤다. 오전에 침대에서 일어나 습관처럼 스마트폰 열고 유트브 열어 음악 켰다. 매일 듣는 찬송이 있다. 다른 날 같으면 찬송 켜고 바로 세면하러 갔는데 오늘은 일어나기 거역스럽다. 페이스북 열었는데 작년에 글이라면서 타임라인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글을 만났다. 침대에서 혼자 구부정한 자세로 작년에 쓴 글을 읽는데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지옥을 헤매본 사람은 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화염을 피해 도망치거나 그 나락에 순응하거나, 그 모두가 아니라면 판을 뒤집어 새 판을 짜는 것. 떠나는 것도 익숙해지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나 세 번째 선택은 황무지에 숲을 일구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 137

 

이 바닥(?)에 판을 바꾸고 싶었다. 이전에 활동했던 단체에서의 활동도 그랬고, 이 후에 프리렌서 활동할 때도 그랬다. 현재 행하는 일도 비슷하다. 그런 삶의 과정 가운데에 도망갈 줄을 몰랐고, 환경에 모순이라고 여기는 일들에 대한 순응은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저항하며 뚫고 가야 하는게 내 일이고 삶인 줄 알았다. 그런 시간들이 꽤 지났는데 그러한 시간 가운데 나를 내가 지키지 못했던 삶 때문에 최근에 심리적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래도 과거 내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지난 주 밤마다 며칠에 걸쳐 읽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본 우리 사회 치부가 보였고 의사로서 목숨을 건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거친 글 속에 현장에 그 생생한 모습 속에서 공감이 컷다.

 

"희망 없이 버텨가는 나는 환자의 삶에 희망을 바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희망이 없지만 그나마 살아나는 환자의 삶에 희망을 보면서도 "영면한 아버지의 자리가 부러웠다."는 글에는 가슴이 먹먹했다.

 

글의 서문에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 나기를 나는 바랐다.’는 김훈 선생님의 칼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랬다. 이국종 교수는 칼잡이다. 희망이 없으나 희망을 돌파하는 우리네 치열한 직장인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칼을 휘두르는 칼잡이.

 

의료업계이 적나라함은 곧 우리 사회의 무능함과 국가정책의 문제와 사회 구조적 문제와 같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마지막 장에 "가는 데까지 간다.... 나는 정경원이 서 있는 한 버텨갈 것이다. 정경원이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끌고 나가는 때가 오면...거기가 나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붙잡는 그 일이 있고 붙잡아야 할 사람이 있음에 살아가는 듯.

 

여기까지의 페이스북 글을 쭈욱 살폈는데 괜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새롭게 시작하는 설레이는 활동이 있지만 준비는 더디고 시간은 지나가는데 정작 가슴 뛰는 일들에 대한 내 안의 고민보다느 먹고사니즘에 대한 또 다른 고민들이 몰려 있는 나를 본다. 내 안의 멋적은 모순이다.

 

토요일이다. 오후까지 집중해야 할 일들 해야겠다. 불안은 죽을 때까지 움직이는 내 안의 파트너라 여기고 삶의 과정에서 내 힘으로 붙잡아야 할 설레이는 그 활동에 집중하련다. 쓰고 싶은 글, 연구 하고 싶은 사회 현상들과 좋은 사람들과의 교재. 산다는 건. 그런거겠지. 

 

작년에 글은 '판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 삶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리 살았고 그 때문에 심리적 힘겨움도 얻었다고 여겼다. 그럴까? 요즘은 그 '판'에서 내 안에 옳다고 믿는 곳으로 천천히 가련다. 판을 이탈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판이 기다리거나 새판을 만들어 가는 길일수도 있겠다. 산다는 것은 확정적일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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