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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네 앞도 앞이냐? 내 앞도 앞이다.

by 달그락달그락 2019.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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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커뮤니티에 이성당에 관련한 지인이 공유한 블로그 글을 안내했다. 댓글이 정말 다양했다. 예전에는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돈만 밝힌다는 부정적인 분도 있었고, 초기 할머님이 많이 베푸시며 좋은 일 많이 하셔서 자손들이 잘 된다는 의견과 이전과 관계없이 지금 사장님이 열심히 하셔서 성공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았다. 


지인이 홍보의 가치와 관련해서 안내한 글이었는데 공유해 놓고 댓글 보니 흥미로웠다. 지인은 홍보의 핵심은 그 제품(프로그램, 사업 등)의 질과 진정성이라는 설명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 SNS에 지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글이 많았다. 이전에 잘 모르는 분이 세상 비판적으로 산다면서 힘들지 않느냐 물었다. 최근에 가족과 펫북 튼지가 얼마 안 된다. 아내가 내 글을 훔쳐(?) 보는 모양이다. 어느날 밤 글 이면에 당신 모습 보면 정말 재미나고 가끔 기가 막힐 거라고 하면서 한 말씀 하신다... ㅠㅜ 이건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나무는 정면이 없고,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사람이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다. 누구나가 그렇다. 내가 보는 쪽이 정면이다.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페르소나. 그리스의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다.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은 누구나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주장했지. 


페르소나가 가면이라고 하니 자신의 본질은 페르소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가면도 자기 자신이다.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페르소나도 자신이고 그 이면의 수많은 가면도 자신이다.


타자의 바라봄에 의해 나를 규정 짓는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하는데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작고 크고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모든 것들이 통합되어 자신을 이룬다. 보여지지 않는 모습 또한 자신이지.


그래서 한마디 하면(꼰데라고 부르지 마라. 그냥 이말은 사람관계에 기초라고 여기는 말이지.. 나도 부족해서).. 사람과 소통하고 알고자 한다면 일단은 타자를 존중해야 한다. 정말 열심을 다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의 내외면을 함께 생각해 보려는 의지적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을 때 관계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왜?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하냐고? 뭐 간단하다. 이 글 읽는 당신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떨 때 화가 나나? 삶에서 상당수의 시간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삶을 영위한다. 그 관계의 공간이 긍정적일 때 사람들은 행복감이 높다. 


결론이 뭐냐고? 내가 본 나무의 앞도 있지만 내 옆에서 나무를 본 사람의 앞도 앞이라는 것을 존중하면서 그 나무 전체를 보려는 노력이 삶을 풍족하게 해 준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아... 또 쓰다 보니 선생질 하고 있구만. 그냥 읽고 싶은 사람들만 보세요들... 나이도 얼마 안 먹었는데 요즘 왜 이러는지.. 자꾸만 꼰대처럼 뭘 설명하려고 하는.. 이것도 제 모습이겠죠. 고쳐야겠어요....ㅠㅜ 


#꼰데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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