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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폭파된 계층이동 사다리

by 달그락달그락 2019. 12. 7.

대학이 계층이동의 사다리인 줄 믿게 하는 세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서울권 명문대를 입학하면 더 좋은 직업을 갖게 되고 경제적 안정성과 사회적 위치를 갖는다는 순환구조를 우리 대부분은 믿는다. 





대학은 계층이동이 가능한 생존의 목표였다. 여기에 모순이 있다. 좋은 대학을 입학해야 그런 삶을 산다는 것은 이미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박살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무슨 말이냐고? 


우선 일류라고 칭하는 대학은 극소수다. 이전과 같이 소수만이 대학을 입학하는 게 아닌 70%내외가 대학 가는 사회에서 상위 몇 %만의 또 다르게 정해진 대학만이 성공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청년들은 계층 이동에 이미 실패 했다는 것을 뜻한다. 


일류대라고 칭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소수가 누구인지도 이미 증명 되었다. 그 소수 대학에 입학하는 청소년 부모들의 부와 가방끈 길이는 크고 길다(관련기사). 부자와 학력 좋은 이들의 자녀들이 명문이라고 칭하는 대학에 많이 들어 가는 것으로 사다리는 끊겼다는 것을 뜻한다(개천에서 용났다고 신문에 나는 일은 정말 신문에 날 일이 되었다). 


대학 간판 하나가 자기 역량과 관계 없이 직(업)장에 입사와 승진을 결정 짓는다고 생각하는 코미디를 믿는 한 공정성 운운하며 시험지만 붙잡고 있는 계층 사다리 운운하는 교육은 현재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지방 인문계 고교 30여명 되는 한반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학생이 2, 3명은 될까? 대학 입시는 계층 이동이 아닌 계층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도구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는 사실인데 자신의 초딩 자녀는 모두 서울권 대학으로 가는 줄 믿는다. 학원을 보내서 선행학습을 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자기주도적 역량을 기르지 않는 한 학원만을 통한 명문대는 불가능하다. 


학원 백날 보내봐라. 명문대가 가능한지. 이건 무슨 어려운 문제가 아닌 그냥 통계다. 학원 가기 싫어하는 청소년들은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돈 낭비다. 


학원을 '가야 하느냐, 또는 가지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 중 대부분이 학원을 다니는대 그 안에서 극소수의 학생들(이미 공부하는 청소년들)만 그들이 원하는 대학을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원 가기 싫은데 억지로 보내는 행위는 부모들이 돈을 거리에 뿌리는 짓(?)으로 비친다. 우리 사회 경제를 위해서 학원에 기부하겠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만 기부는 기부할 곳에 하면 좋겠다.


더 비극은 그렇게 개고생해서 명문(?) 대학 갔는데 졸업 이후 예전 만큼의 프리미엄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블라인드 입사 등 실제 자기 역량을 중심으로 로 취업하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명문대 졸업했다고 100%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의치한1' 다음으로 SKY라는 말이 있을 정도. 대학보다는 자기 역량에 따른 힘에 의해 취업이나 승진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어 간다. 


그래서 대학 간 후에도 그놈의 스펙전쟁 중인 청년들을 볼 때면 안쓰러럽기까지 한다. 서울의 대학이 이전과 같은 수준의 좋은 직장과 승진과 안정을 준다는 믿음을 이제는 고려해 봐야 한다. 그러한 일들이 지방대 보다 확률적으로 높나고 우기겠지만 이전만 못한 상황은 내가 주장하지 않더라도 통계나 언론이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대학은 큰 학문(?)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공부해야 한다. 공부에 기초해 직업도 갖지만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기 전문성에 의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고 그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당사자인 청소년, 청년들의 실질적인 사회참여가 구체화 되어야 한다. 


더불어 청소년들은 대학을 넘어 자기 삶을 가꾸고 꾸릴 수 있는 힘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함께 하고 도와야 한다. 운영하는 연구소와 달그락의 이유 중 하나다. 사람답게 사는 삶의 과정, 복된 삶, 내가 진정으로 고민하고 집중하고 싶은 멋진 일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삶의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체험하고 성찰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필요하다. 단순히 10대, 20대 공부하며 사회를 준비하는 때에서 끝나는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죽을 때까지 고민하면서 나누어야 할 삶의 일이다.


지난 주 괜히 욱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인데 수정해서 좀 다듬어 보려다가 또 이모양이 되었다. 또 욱했나?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쓸말이 많다는 것인데 또 또 마무리가 피곤타. 거기에 요즘은 자꾸만 누구도 들여다 보지 않는데 잔소리를 허공에 하는 기분이다. 


그런 토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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