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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함께 걷는 이가 더 많은 새해였으면

by 달그락달그락 2020. 1. 4.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하는 활동이 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타자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이들은 너무 감사해 하고 감동하고, 어떤 이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며, 어떤 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간혹 뒤돌아서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 관계의 복잡성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관계의 ‘벽' 두께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 두께만큼의 관계에서 차이를 두고 만나면서 그들만의 관점으로 소통하게 된다. 관계의 벽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 따라 관점의 굴절이 심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하지. 어떤 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신뢰와 기대를 가능한 낮추면서 상대와 관계해야만 자신이 상처를 덜 입는다고 충고한다. 말장난이다. 


30대 여성이 늦은 밤 귀가하는데 누군가 계속해서 따라 온다. 너무 무서워 발걸음을 빨리하는데 따라오는 사람도 점차 빨라진다. 갑자기 뒤에 사람이 달려오더니 어깨를 붙잡았다. 너무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남편이다. 마음이 놓인다. 내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르면 불안하다. 


사람이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 관계의 벽이 허물어져 내 보이는 과정과도 같다. 그래서 아프기도 하지만 불안은 상대적으로 덜해진다. 역설적으로 참을 수 있는 힘도 생긴다. 이성간의 사랑만 그런 게 아니다. 선후배, 직장 동료, 친구간의 신뢰와 기대도 비슷하다. 그 관계의 벽을 낮추고 좁히는 과정에서 서로 알아가면서 불안을 낮추고 신뢰하게 된다. 물론 상처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수준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상처 받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 보이지 않고 항상 타자와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면 당연히 관계는 형식화 된다. 관계의 질은 보나마나 뻔하다. 인간관계에서 마음이 편하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만 사람들의 오픈된 관계에서 얻게 되는 깊이 있는 내밀한 '정'과 '사랑'을 느끼기에 쉽지 않다. 


어쩌면 좋은 관계란 끊임없는 적당한 개방일수도 있겠다. 누군가 관계하면서 자신을 개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쉽지 않다. 자신을 가리고 타자의 속마음을 알려고 만 하면 어찌 되나? 경찰서나 검찰도 아니고 그런 관계는 긍정적으로 만들어가기 어렵다. 


새해 첫날부터 머리가 아프고 콜록 이다가 잠에서 깼다. 감기몸살이 심했다. 습관처럼 스마트폰 열어서 메신저 확인하다가 SNS 열었다. 9년 전 가장 많은 '좋아요' 받은 거라면서 소환한 글이 타임라인 메인에 올라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이정하 님의 '바람 속을 걷는 법 1'이다. 


그때도 사람들이 많이 그리웠나 보다. 여전히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내 안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몇 명인지 마음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조선의 문인 김광국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했다. 박노해 시인은 그의 사진전에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해다. 우리 모두가 비틀거리고 허욱적대면서 걷다가 뛰다가 할 거라는 것을 안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삶의 여행에서 매 순간 놓치지 않는 신념 같은 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이다. 즐겁고 행복해도 넘어지고 다치고 허우적대도 그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다. 그 삶의 여행 가운데 타자와의 관계에서 ‘신뢰’, ‘정’ 이 넘치는 관계는 적절한 개방이다. 그 개방의 요체는 타자를 긍정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이겠다. 


"둘에서 하날 빼면 하나일 순 있어도, 너를 뺀 나는 하나일 수 없는 거야" 원태연 님의 시 ‘둘이 될 순 없어’ 중에 가져왔다. 너를 뺀 나는 하나일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인 모양이다. 모두가 개인이고 제각각이지만 어쩌면 우리네 삶은 모두가 연결되어 하나로 되어 있는 것만 같다. 그 관계의 공간 안에서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음을. 또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