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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뭣이 중헌디

by 달그락달그락 2020. 2. 8.

퇴근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거실에 있는 초등학생 아이들은 후다닥 숨는다. 집에 들어 간 후 가방은 그대로 어깨에 있고 외투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 집이 작아서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지만 못 본 척 한다. 

 

"울 아이들 어디 있나?" 라면서 아이들 찾는 시늉을 한다. 바로 찾으면 좋아 하지 않으니 방과 배란다. 등을 돌면서 열심히 찾는 척을 한 후에 "못 찾겠다"고 하거나 아이들 침대 안에 있으면 꼭 껴안으면서 매일의 행사를 마친다.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매일이 새로운 모양이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큰 아이 초등학교 1학년인가?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출근 할 때, 퇴근 할 때 아이들에게 거실로 나오라고 했고 인사 시키고 주고받으려고 했다. 나름 예절 교육이었다. 학교와 사회에서 최소한 예의 없다는 이야기는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강제로 인사를 주고받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출퇴근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퇴근하면 현관에서 아이들이 나와서 인사할 때까지 서 있었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어느 순간 이런 인성이라고 포장한 이상한 예절 교육이 아이들에게 ‘정말 좋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만 멀어지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이 많아졌다. 

 

보수적인 집에서 자란 나는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잘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람이었다. 사회생활 하다 보니 선배, 상관, 어르신 등에게 인사 잘하는 게 좋다는 인식은 당연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 어설프게 인사 시키는 일 잘 하게 한다고 강압하다가 아빠(나)와 아이 관계만 멀어지는 것 같았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인데 이를 해치면서까지 예절 교육 한다고 강요하는 일은 옳지 않았다. 그럼 아이들은 밖에서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인사를 안 할까? 자세히 살피니 나름 하고 있더라. 

 

아침에 출근하는데 막내가 내 책상 위에 있는 문구를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지라고 했는데, 그걸 본 큰 아이가 매번 동생만 주고 자기는 안 준다고 살짝 삐쳤다. 큰 아이가 갖고 싶었던 문구였던 모양이다. 출근하는데 큰 아이가 거실 책상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고개만 돌리면서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막 나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아빠 마스크요.’ 하면서 출근 하려는 나에게 새 마스크 봉투 열어서 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한다. 

 

살면서 깨닫는 게 많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 깨달음을 주는 존재는 책과 선생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 모든 이들이 나에게는 선생이었다. 

 

특히 무언가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던 우리 아이들이 나의 가장 큰 스승이라는 것. 살면서 배우는 게 많구나.

 

www.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number=676280

 

[아침발걸음] 뭣이 중헌디

퇴근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거실에 있는 초등학생 아이들은 후다닥 숨는다. 집에 들어 간 후 가방은 그대로 어깨에 있고 외투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 집이 작아서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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