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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일상을 누리는 삶

by 달그락달그락 2019. 8. 19.

지난 주 퇴근길. 귀가하면서 아이들 놀래어 주려고 키번호 누르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에서 “누구세요?” 그런다. 조용히 있었다. 초인종 카메라에 불이 들어 왔다. 누군지 살피려고 거실에서 카메라 켠 듯싶다. 재빨리 입을 크게 벌리고 카메라에 입을 들이 댔다. 아이들이 ‘놀랬겠지’라는 생각하면서 므흣한 미소를 짓는 그 순간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바로 옆집 사는 청소년이 킥킥킥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내가 지금 뭘 한 건가? 청소년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고 급하게 번호키 누르고 들어왔다.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란다. 이상하면 치과를 가야지 하면서 혼자서 키득거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아침 하늘이 맑다. 아내가 일정 때문에 다른 때보다 이른 시간 출근하면서 아이에게 한 말씀 남겼다. 일어나자마자 큰 아이가 “아빠 엄마가 빨래 널고 출근하래요.”라고 전한다. 


세탁기 열어 빨래 탈탈 털어 건조대에 올리는데 기분이 좋다. 설거지는 가능한 하려고 하는데 빨래는 아직 몸에 익지 않았다. 싱그러운 햇볕에 노출되는 수건과 옷들이 건강해 보인다. 빨래를 일광욕 해 주는 느낌이다. 빨래들이 하늘의 따뜻함과 에너지를 모두 받을 것만 같다. 퇴근하면 빨래들이 나에게 그 뽀송뽀송한 에너지를 전달해 줄 것만 같다. 

요즘은 아이들과의 몇 마디 대화와 초인종 누르면 장난치는 일, 자주 하지는 않지만 빨래 너는 일, 설거지 하다가 잘 쌓인 그릇 보는 일, 단골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끄적이는 글 쓸 때의 그 순간의 느낌과 후원자와 위원 분들과 몇 마디 대화 등 매 순간이 귀하게 느껴진다. 일상에서 만나고 이루어지는 일들이 모두 중하다. 

요즘에서야 어떤 일이 귀한지 조금은 알겠다. 미래에 엄청난 변화를 꿈꾸며 지금 현재를 희생시키는 일이 아니다. 현재가 긍정적이며 건강해야 미래도 좋은 순간을 산다는 것. 일상을 누리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삶이 중요하다. 이는 나와 같은 중년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가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며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런데 유독 10대 청소년들에게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입시 경쟁만으로 몰고 가는 일이 많아 보인다. 입시의 대상으로 중, 고등학생의 때에는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공부는 참고 인내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 안의 가치와 즐거움은 온대 간대 없다. 학교 내외의 생활 가운데 누려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 순간을 누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도 미래에 직장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힌다. 취업 이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내가 그랬다. 그 순간에 삶을 누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계속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현재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 온전히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급하게 처리하는 일이 현재가 되고 만다. 앞으로 어찌 될지도 모르는 취업이나 돈에 저당 잡히면서 매번 지금 이순간은 힘겨워도 된다고 믿게 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일상을 살며 누리는 삶은 나이 먹어서 깨달아 가는 게 아닌 10대의 때에도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 무언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 현재의 치열한 경쟁과 힘겨움이 당연하다는 논리는 날려야 한다. 

공부가 입시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본질은 아니다. 공부하며 그 내용의 이치를 깨닫고 성찰하면서 느끼는 앎에 대한 희열과 즐거움이 있다. 이를 알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삶의 대부분이 그렇다. 먹고 자는 일, 가족과 대화하고, 친구와 여가를 즐기는 일 등 모든 일이 그 안에서 중요하다. 알지 못하는 어떤 미래에 막연한 성공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을 잘 누려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일상을 그리 살아야 하지는 않을지. 

8월 여름 휴가철이 끝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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