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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퇴로 열어놓기

by 달그락달그락 2019. 4. 2.

경험의 과정 전체를 내가 결정해 보는 과정으로서의 진로 찾기

청소년 자신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깊은 ‘자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내가 누구인지는 ‘이성’과도 연결 되지만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자아의 감정과 더욱 가까워 보인다. 자신의 자아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타자(사람, 책, 미디어 등)와의 관계에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경험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경험의 과정 전체를 내가 결정해 보는 과정이다. 사람도 책도 어떠한 체험도 자신이 고민하여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결정하면서 체험하고 느끼는 일이다. 참여하면서 만들어 가는 자기결정이 경험으로서 성찰이 쌓이는 과정이 진로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다. 

어떤 일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이면에 자기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그 생각은 부모, 친구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근거가 되었거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여 인식이 생기는 등 어떤 정보의 취득과 만남의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느낌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결정 후 참여하면서 이루어지는 여러 경험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어 있다.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간접 경험이나 만남 등에서도 이루어진다. 

그 만남은 형식적인 어떤 기술적인 만남이 아니다. 삶의 과정이 녹아 있는 진정성에 바탕이 있는 만남이다. 예를 들어 진로를 위해 청소년들에게 바리스타 체험이 유행이라고 유명 커피숍에 가서 커피 내리는 실습하고 한잔 마셔 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어떠한 직업이건 당사자에 역사와 정체성과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카페에서 커피 내려 보는 경험도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은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리스타의 삶의 과정을 듣고 그 역사를 만나게 돕는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어머니가 허락했다. 학원을 3개월 정도 다니다가 아이가 갑자기 피아노가 싫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림을 그려 보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살짝 화가 났다. “너, 언제까지 할 거니?, 중간에 또 그만 두면 안 된다. 이게 마지막이다. 끊기가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다그쳤다. 

어떤 부모는 “너 이 단체 활동 끝까지 해야 한다. 책임져야 한다. 만약 중간에 그만 두면 다시는 동아리 활동이고 뭐고 여기 보내 주지 않을 거다.” 어머니는 아이의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 중 하나다. 10대의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막는 행위다. 자녀의 퇴로를 막고 공격하는 것과 같다. 피아노나 영어 등 한 두 가지만 경험하고 그 일을 깊이 있게 하면 자녀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가. 어렵게 신청한 지역 청소년기관에서 시작한 동아리 활동이 몇 개월 있다가 다른 활동으로 바뀌거나 그만 두었다고 문제가 되는가. 

직업은 수만 가지인데 자녀가 지속해서 하지 않거나 부모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다른 경험을 할 퇴로를 막아 버리면 어찌 하나. 그런 식으로 공격받은 자녀는 더 이상 부모에게 다른 경험의 기회를 요구할 수 없다. 혼자서 삭히면서 부모와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시작했을 때 학습이나 경험, 그 일을 몇 시간을 할 수도 있고 몇 개월을 할 수도 있다. 몇 년, 수십 년을 반복하며 깊어 질 수도 있다. 기간은 개인의 선택이니 누군가 타자에 의해 결정될 일이 아니다. 어떤 활동이나 일을 경험하고 싶은 청소년에게 전달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무엇을 배웠는지 자연스럽게 확인하는 일이다. 

책을 읽어도 부모나 지도하는 교사가 질문할 수 있다. 무엇을 남겼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한다. 이때에 거창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도 고민이다. 자녀들은 ‘몰라요’라고 하거나 ‘그냥 재밌어’라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 그거면 됐다. 자칫 독후감 쓰라고 하고 자꾸 강압하면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취조하듯이 묻다 보면 독서조차도 하기 싫은 일로 치부되고 만다. 말하고 싶을 때 말하면 된다. ‘재밌어’라는 표현 그거면 됐다.



<새전북신문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