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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진로 선택의 이유

by 달그락달그락 2019. 6. 22.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선택한 일들로 인해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유한한 시간의 어디쯤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있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는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잠에서 깬 후 바로 일어날까, 스트레칭을 할까, 조금 더 잘까를 결정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집중해서 읽고 있는지, 읽다가 덮고 싶은지, 옆에 사람과 대화하다가 신문을 꺼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읽고 있는지, 페이스북을 하다가 친구의 글을 읽다가 우연찮게 이 칼럼의 문구를 보게 되어서 잠시 집중하는지 등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몇 가지 선택을 통해서 그 공간에 들어가 집중하게 된다. 


내가 선택한 것에 따른 어떤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에서 참여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 신문을 선택했고 이 글을 읽는 그 순간 선택에 의한 글을 읽는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뜻이고 집중도에 따라서 참여 수준이 결정된다. 


내가 선택한 기사를 읽는 공간에서 집중하여 읽고 고민하고 성찰하면 그 공간의 참여 수준은 높을 것이나, 반대로 칼럼 한 두 줄 읽다가 다른 생각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켜고 드라마 기사를 보는 순간 칼럼을 읽고 있는 공간의 참여수준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스마트폰과 나와의 또 다른 드라마 기사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자기 선택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서 참여하는지에 따라 진로라는 삶의 과정에 방향과 질이 결정된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긍정적인 ‘진로’를 위해서는 유한한 시간을 인정하고 그 시간동안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하면서 공간을 설계하고 참여하는지를 꾸준히 성찰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지. 


진학 또는 직업만을 진로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진로는 진학과 직업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인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함한 ‘삶’이 ‘진로’다. 사람에게는 삶이라는 유한한 시간이 있다. 삶의 시간은 내가 존재하는 공간에 따라 각 시간대로 나뉘어서 계속해서 앞으로 흐른다. 


유한한 시간 동안 삶의 방향은 내가 존재하는 공간마다 어떠한 선택을 하면서 참여했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한 시간 동안 자신이 설계하고 만들어 놓은 공간에 ‘참여’ 수준으로 이루어진다. 삶이라는 커다란 또는 상대적으로 작은 ‘시간의 공간’에 각각으로 이루어진 곳들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해서 결정하여 참여 했는지가 내 삶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소년, 청년의 진로에 대해서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부분은 유한한 시간 동안 자신이 결정하는 그 ‘선택’의 ‘이유’다. 선택한다는 것은 그 이면에 어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점심밥을 먹는 것도 선택이고 먹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배탈이 났을 때 먹지 않지만, 아침에 밥을 굶었을 대 많이 먹기도 한다. 


점심 한 끼 먹고 안 먹고도 이면에 여러 일들이 있는데 하물며 평균 수명이 80년을 넘어 버린 현재 사람들의 진로를 단순히 몇 가지 검사지나 생의 전반적인 역사를 알지도 못하는 어떤 전문가의 몇 마디 이야기를 신이 내려 준 기준인 냥 믿고 청소년들을 몰아댈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신의 직장에서 왜 일하고 있는가? 그만 둔 이유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유는? 모든 게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 선택의 일이고 그 과정에 공간을 어떠한 근거로 만들어 가는지가 우리 삶이고 진로라는 것. 뭐 그렇다는 거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