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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청소년의 이유 있는 불안과 우울

by 달그락달그락 2017. 12. 3.

청소년들의 고민들이 변화하고 있다. 사회 상황에 따라 그들의 고민이 다양하게 분석되는데 ‘1990년대 초와 20년이 지난 후 청소년들의 고민 사례를 분석한 자료를 살피니 20여 년 전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대인관계'와 '진로'순이었다.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어떻게 하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인지, ‘입시 공부에 대한 부담과 진로 등이 주를 이룬다. 


20년이 지났다. 요즘 청소년들도 대인관계와 진로에 대한 문제는 여전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이유 없는 불안'과 '우울감'으로 자살률은 OECD국가에서 1, 2위를 다툰다. 가족관계와 인터넷 사용의 고민 또한 20년 전에 없던 일인데 부각되고 있다. ‘이유 없는 불안과 우울감’이라. 



출처. 한국일보


최근 원고 쓸 일이 있어서 자료 찾다가 이 보고서 안내된 기사 읽고 괜히 찔끔했다. 이유 없는 불안은 현재 내 모습이기도 했다. 청소년활동을 하는 사람인데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 나를 살피니 딱 요즘 우리 청소년들 고민의 메인에 있는 사람은 아닌지.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라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성세대 대상으로 강연장에 가끔 서게 되는데 자아정체성 완벽하게 확립한 사람 있느냐고 질문하면 백이면 백 대부분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라는 자아정체성. 나의 독특성을 자각한 상태를 뜻한다. 과연 자아정체성을 완전하게 확립한다는 것이 옳은지도 의문이다. 내가 나를 만나고 알아가기도 하고, 타자를 만나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는 자아정체성은 매 순간마다 조금씩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과정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하는 분절적 인간관계를 맺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환경이 요즘 우리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인 ‘이유 없는 불안’의 원인은 아닌가? 


수십 년간 이어진 가장 큰 고민인 ‘인간관계’는 또 다른 양상으로 요즘 불안을 만들어 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차단하고 나누어 분절시키는 환경 안에 갇혀 있다 보면 당연히 불안하고 우울하겠다.  


내가 나를 알기 위해서는 타자에게 비추어진 내 모습도 인지해야 하고, 주변의 다양한 환경에서 보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철저히 경쟁적 상황에 놓여 내가 관계해야 할 친구나 동료들을 배척하고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자기개발 운운하며 성공 사례로 나타나는 이들의 주요한 내용은 단순해 보인다. 무수한 사회적 경쟁에서 타자를 누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끌어내면서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세상이다. 


사회 환경이 불안을 가중시키고 정체성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만든다. 자아정체성 확립은 이 땅에서의 우리 내 삶의 마지막까지 진행형이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 묻고 답하는 과정인데 이 일의 요체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만들어 가는 것과 같다. 


부버(Buber)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했다. 쿨리(Booley)는 거울 자아론(looking glass self)을 통해서 타자는 나를 비추는 거울로서 타자와의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나는 타자라는 거울에 나타난 나를 인식할 수 있다고도 했지. 


인간이란 자기 정체성까지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만남에 구속되고 마는 사회적 존재로서 나타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자존감의 폭이 결정된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인 ‘자아존중감’. 


현재 우리 사회에 청소년들의 낮은 자존감은 불안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바꾸어도 말은 똑같아진다. 불안하고 우울하니 자존감은 낮을 수밖에. 


자존감과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 특히 이전과 다르게 부모와의 갈등까지 유독 심해 졌다. 이런저런 대안 쏟아지지만 나름대로 이 분야 집중하는 내 입장에서는 '인간관계'와 '자존감'이 요체다. 특히 사회적인 인간관계다. 자존감 또한 타자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자존감 높이고 불안과 우울 등과 이로 인한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단순하다. 좋은 관계다. 


좋은 관계가 행복도와 건강을 지켜준다는 연구는 이미 넘쳐 난다. 이전 75년간 진행된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소에서 가족, 친구, 지역사회와 관계가 좋은 사람일수록 행복하게 오래 산다고 하고, 외로움(loneliness)은 독약이다. 불행할 뿐 아니라 건강과 뇌 기능(brain functioning)도 일찍이 중년부터 쇠락(decline earlier in midlife)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청소년들이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좋은 세상은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진정성 있게 관계하고 지지하고 긍정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공간이다. 


집에서는 성적이 아닌 자녀로서 사랑하고 학교에서도 성적이나 어떠한 경쟁의 승자로서가 아닌 스승과의 관계 등 그 공간에서 관계의 본질에 집중할 일이다. 긍정적인 인간관계에서 불안은 낮아질 것이고 당연히 자살은 줄어든다. 


자살 원인의 핵심 키워드가 외로움 아닌가 말이다. 복된 삶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많아지게 하는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 것만큼 가슴 떨리게 기쁘고 감사한 일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이러한 관계가 커질 때 자존감은 넘쳐흐르겠다.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인터넷의 소셜미디어 등 그 어떤 공간이건 사람이 존재하는 그 곳에 신뢰하는 인간관계가 넘쳐 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