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사는 이야기

제주의 생감정, 그 일탈의 경쾌함

by 달그락달그락 2019. 1. 11.

제주에 왔다. 스마트폰을 껐다. 알람도 일정표도 꺼졌다. 불안했다. 내 손에 휴대폰이라는 기계가 들어 온 이후 처음으로 일주일여 시간 동안 통신 너머 수많은 사람들과 단절된 내가 됐다.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덜 불안해 졌다. 알람이 없는 잠을 자고 해 뜨는 속도에 맞추어 잠을 깨어 올레길을 걸었다. 1코스, 2코스, 3코스 그리고 7코스, 8코스 등. 





걸으면서 쫑알대기도 하고 하늘도 봤다. 하늘은 높고 그대로 인줄 알았는데 이번 주에 내가 본 하늘은 전혀 다르게 말을 걸어왔다. 





매일 올레길 주변에 향 좋은 커피가 있다는 카페를 찾았다. 수마, 테라로사, 루핀, 두가시……. 밤이면 영화를 봤다. 몇 년 전 다시 개봉한 ‘베티블루 37.2’, 그리고 ‘완벽한 타인’과 ‘스타이즈 본’ 등 되는 데로 보고 잠을 청했다. 





게스트 하우스와 카페에서 틈틈이 은유 선생님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 진다”를 읽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생의 빈틈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말 없는 그것들이 품은 살 같은 말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를 본다.” 154쪽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욕심이라고, 그것도 ‘무리한 욕심’이라는 이 문장이 가슴에 ‘퍽’하고 달려 왔다.  





늦은 밤 숙소에서 내 가슴을 열어 보니 여러 개의 방이 있더라. 사람으로 채워야 할 방이 있고, 글과 영화와 음악의 방이 있었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일’이라고 행하는 내 존재의 이유였던 ‘활동가’의 방이 가장 크게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할 방도 있었고, 사랑했던 친구가 떠나 버려서 텅 비어 있던 방은 많이도 외로워 보였다. 떠나고 돌아 와서 다시 온기를 내는 방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비어 있는 곳도 있을 것 같았다. 





비어 있는 사람의 방에 책들과 영화와 음악이 허전함을 매워줄까? 그렇지 않을 꺼다. 그래서인가. 나이 먹으면서 그저 아파하지 않을 만큼만 관계를 희망하는지도 모른다. 빈 공간을 내버려두고 가끔은 무시하고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그 옆에서 책과 영화와 여행으로 가려버린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 지나온 삶들을 돌아보면 무엇이 그리 치열했는지 모르겠다. 지나 보니 두발 자전거 같은 시간들이었다. 멈추면 넘어져서 일어날 수 없다고 믿고 무조건 바퀴를 굴려야 했다. ‘활동’이라고 표현하는 일은 나에게만큼은 온전히 모든 것이었고 그 안에 삶이 있을 지경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겠다만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불면증이라는 녀석이 훅 하고 밀고 들어왔다. 매일 밤을 맞으며 언제인가 새벽녘에도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 아파트 베란다 너머 한 참 낮은 길가를 보고 있는데 왜 이리 조용하고 조용하게 혼자인지. 슬펐고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삐끗해서 넘어지면 나와 연결된 삶의 관계에 얽힌 큰 자전거가 넘어질 것만 같았다. 너무 힘들어도 절대로 멈추면 안되었다. 최소한 넘어지지는 않게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고 그런 순간에도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아 댔다. 어떤 이는 치열함으로 포장해 주면서 삶을 지지하고 존중해 주었지만 내 가슴에 있는 여러 개의 방들 중 꼭 들어왔으면 하는 공간들은 자꾸만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오로지 어떤 변화를 위한 ‘활동’이라는 방만 커지는 느낌.  





제주에서 걷고, 자고, 먹고, 싸고, 읽고, 보면서 그 빈방에 한 곳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20대로 돌아간 느낌. 고마웠다.  


나에게 ‘활동’은 ‘노동’이고 ‘학습’이며 ‘여가’였다. 그 안에 삶의 가치를 투영했고 그렇게 긴 시간을 넘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려 왔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그놈의 ‘치열함’은 미덕이었다. 이제 그 치열함이 질린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어떤 변화를 위한 목적지향적인 가치에 집중했었고, 그 과정 자체가 내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조급증은 갈수록 커졌고 현재의 ‘꼬락서니’가 언제부터인가 내 모습으로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행해야 할 일은 가치, 이상, 철학, 어떤 뜻을 위한 변화의 과정으로서의 활동이기도 하나 그 수준은 이제 넘어야겠다. 사람들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의 최선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내려가야겠다. 아픈 사회에 약한 사람들을 추동해서 참여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힘의 운동이 아니다. 요즘은 그럴만한 힘도 없다. 가능하면 사람들과 온전히 함께 하며 공감하면서 몸을 싣는 것. 그 힘은 낼만하겠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존재를 위한 존재의 최선들. 그거면 됐다.  





일주일의 시간이 급했다. 무얼 본 기억이 많이 없다. 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고 돌아가는 거라는 어떤 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주 짧은 일주일의 시간 동안 관계를 단절하고 떠나 올 때 늘 가슴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녀석이 움찔 거리기도 했지만 다른 공간에서의 그 시간이 살짜기 불안하면서도 좋았다. 불안을 즐겼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일상성이 무너지는 것을 불안이라고 표현한 철학자가 있었고, 알레드보통이 주장했던 사랑결핍, 속물근성, 불확실성 등에 의한 결핍에 의해 불안이 나오기도 하겠다만 내 안의 불안은 어떤 해석이 아닌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다. 친구도 아닌 녀석이 친구하겠다고 항상 추근거림 당하는 느낌. 


그 불안함이 불안함으로의 또 다른 공간에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상의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는 그 불안함의 따뜻함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평안함과 안락이고 추억이었다. 





제주. 그 일주일간의 짧은 시간 동안 걷고 쫑알댔던 나만의 숲과 하늘, 오름, 그 길에 있는 모든 공간에서 만들어진 일탈의 경쾌함. ‘생감정’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갔고 하루가 지났는데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