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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새길

상처

by 달그락달그락 2018. 8. 19.

상처를 주기만 하는 사람은 없다. 상처를 받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다. 사람에게서 받는 이 상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상처를 자기 성찰과 자기 도구로 활용하며 상처 받은 이들을 돕는 이들도 있지만, 상처를 파괴적 에너지로 분출시켜 폭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상처의 치유에만 매달리는 이들도 있다. 이 부분도 고민이다. 상처를 치유해야 하지만 그 안에 어떤 뜻과 나의 성찰과 내 안의 교만과 연결 시킬 때 또 다른 깨달음이 되기도 한다. 생산적 에너지다. 


상처를 주고 할퀴기만 하고 그런 폭력적 에너지를 중심으로 편가르고 자기편으로 만들어 이간질 하며 오히려 상처 받은 이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자들도 있다. 끊임 없이 자기를 정당화 한다. 파괴적 에너지다. 


편가르고 타자를 비판 아닌 비난하는 자 옆에 가면 안된다는 것은 내 보기에 진리다. (devil의 어원은 divide라고. 어떤 이들은 고대 영어 'dēofol'이 변한 것이며, 어원은 '비방하는 자'라는 뜻의 그리스어 '디아볼로스 διάβολος라고 했다나) 





주일이다. 차정식 목사님 말씀에서 예수님의 상처인 스티그마1를 묵상한다. 


너무 아프기만 한데 그 모든 것들을 껴 안고 가신 그리스도의 그 상처. 너무 아프기만 한데 그 십자가의 상처 때문에 살고 있는 나. 


누군가 행하는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징표로서 나타나는 유대인의 '할례'2를 넘어서서(기독교인이라는 허울),  이 땅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그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받아야 하는 그 상처를 남기면서 그리 살아야 한다. 


나의 이기심과 교만을 통한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스티그마 예수... 그 상처만이 나의 상처임을 알아야 하는데. 삶은 쉽지 않구나. 

  1. 성흔(聖痕)은 스티그마타(라틴어: stigmata)라고도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에 몸에 생겼다고 전해지는 상처 또는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의 몸에 저절로 나타난다고 전해지는 예수가 받았던 상처와 유사한 상처를 말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흔을 기적의 하나로 보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본문으로]
  2. 구약에서 생후 8일째 되는 유아에게 시술하여 신(神) 야훼(Jahweh)와 이스라엘 민족간에 체결된 '계약의 표징'으로 해석한다. 즉, 자신의 의지와 어떠한 고민과 성찰에 의한 주체로서의 신을 만나는게 아닌 태어난 그 이유만으로 진행하는 표식으로 그저 기독교인으로서 허울만 가지고 사는 우리네 모습이 아닌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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