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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정치적 중립의 담론에 숨어 있는 악

by 달그락달그락 2016. 11. 4.


[출처. THE HUFFINGTON POST]


시국선언이 봇물 터지듯 나온다. 청소년들도 일인 시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학에 청년들의 시국 선언문도 나오는데 최근 모 대학의 학생회에서 선동을 이유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며 시국선언 안하겠다고 한 일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지난 주 귀가 하던 중 모 학교 단대 학생회 활동하는 청년에게 연락이 왔다. 시국선언을 해야 한다며 전체가 함께 하자고 총학생회에 제안했더니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면서 지금은 기도할 때라고 답했다면서 답답해했다. 


우리 헌법은 국민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와 정치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들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중립은 개인 신분상이 아닌 직무상의 의무다. 자기 직무에서 자신의 신념을 펴면 안 된다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이와 반대의 역사가 있다. 



[1967년 6월8일 치러진 총선에서 박정희 정권은 노골적인 부정 불법 선거운동으로 또다시 대학생 고교생을 비롯한 전국적인 규탄시위를 불러 일으켰다. 사진은 그해 7월10일 공화당이 단독 개원을 강행하자 야당인 신민당의 의원 당선자와 당원들이 서울 태평로 당시 국회의사상 정문 앞에서 '선거무효'를 주장하며 연좌농성을 하는 모습. 자료. 한겨레 자료사진]



이승만 정권뿐만 아니라 박정희시대에 와서 국가 기관을 동원해 공무원들이 금권선거의 중심에 서게 됐다. 1967년 6・8선거는 박정희시대의 대표적인 부정선거로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공무원을 누군가의 정권 유지 차원에서 활용하면서 맹종의 대상으로 보는 일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일이다. 



[시위 학생이 지난 10월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모 지역에서 국가의 청소년참여 기구인 청소년특별회의 청소년이 최근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 문제로 일인시위 했는데 관계자가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 하며, 특별회의 해촉 운운하는 기사가 났다. 그 어디에도 특별회의라는 말은 없는데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 자신이 속한 직무나 역할에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해촉을 이야기 했다는 글이다. 요즘 여당, 야당 모두가 거국내각 특검 등을 소리 높여 외치며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1961년 4월 예루살렘 법정에서 나치 정부 당시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전범 재판을 받고 있는 칼 아돌프 아이히만(가운데)의 모습. 출처. 한국일보, 가디언홈페이지]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게 정치적 중립이라면 그 중립은 그만해야 한다. 요즘 시국에 정치적 중립 운운하면서 위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자들을 생각하면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이 떠오른다. 나치 정부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전범 재판을 받았던 이자는 나치에게는 최고의 공무원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가족을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강조한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공무원으로서 내가 행하는 일의 의미도 해석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기 일에만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것.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며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말고, 선명하게 자신의 관점이 무엇인지 선언하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현재 통치를 지지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면 그만이다. 정치적 중립과 선동 운운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던 이들, 기회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철저히 자신의 이득에만 따라서 움직이는 이들이 나는 더욱 더 두렵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입신양면과 기회주의적인 사고만 있지 않은가? 친박 중에 강성 친박이라고 일컫는 조원진 의원. 이 분이 최근 "박근혜 대통령님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세월호를 ‘조류인플루엔자’에 비유하는 발언을 한 의원이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오직 기도만 하자는 이들이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배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중립 운운하며 가운데 선 것은 배를 난파시키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차라리 반대편으로 가면 그자를 끌어내려는 노력이라도 한다.  




‘탁상 살인자 아이히만’을 쓴 역사학자 세자라니는 아이히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묘사를 비판하며 그는 확신에 찬 반유대주의자였음을 지적하다. 생각 없음이 아닌 반인종주의 과업에 쏟았던 열정이 상상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생각 없음이 정치적 중립이라면, 어쩌면 악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도만 하고 있으라는 자들이 아닌가? 그래왔다. 악은 매번 사회적 문제가 터졌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담론에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