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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청소년진로

신 노예 양산하는 답정너 교육과 스펙

by 달그락달그락 2016. 7. 25.

어느 학교. 담임교사가 반장을 불러서 명령을 내렸다.  

“반장, 너 가서 야자시간 떠드는 애들 이름 좀 적어 와라.” 

그러자 반장이 얼굴을 붉히며 바로 대꾸한다.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반장을 선생님이 뽑아 준 것도 아니고, 저를 반장으로 선출해 준 것은 우리 반의 학생들입니다. 반장은 반의 학생들이 공부와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대표성을 가진 위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의 프락치나 간첩도 아니고, 저를 뽑아 준 친구들이 졸거나 하면 그 이름을 가져 오라고 하다니요? 담임선생님으로서 부당한 명령 같습니다. 교육적 가치에도 맞지 않습니다. 철회하셔야 합니다.” 



소설가 윤흥길의 <완장>이 원작인 드라마의 한장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반장이 있을까? 반대로 떠든 친구뿐만 아니라 졸거나, 교사를 욕하는 친구들 이름까지 모두 적어가는 반장도 있겠지. 나는 이러한 고자질 하는 행위를 ‘반장질’이라고 칭한다. ‘반장질’ 잘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는 어떻게 대우를 해 줬나? 반장질 잘하는 학생이 기성세대가 되어서 장관, 국회의원, 총리를 할 경우에 자신을 선출해 준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까? 



답정너 풍자 그림(출처 미확인, 인터넷 여기 저기) 


우리 공교육은 현재 반장질 잘하는 신 노예를 만들어 내는 학벌교육이다. 교육이 개인의 소질과 유능함을 개발하며 사회적으로 연대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기재로서 작용하는 게 아닌 철저히 극소수 지배자의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 인격의 도야・민주시민・인류공영의 발전, 홍익인간의 가치 등 교육기본법의 기본 이념에 충실한 교육이 아닌 무한경쟁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리고 있고 이를 당연시 여긴다. 


철저히 경쟁하게 하면서 이기주의자를 만들어 내는 교육, 그 어떤 힘을 가진 이들이 묻는 말에만 답을 잘하게 하는 훈련이다. ‘반장질’을 훈련받으면서 힘을 가진 이에게 종속되도록 한다. 비판적 사고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속어로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답정너’를 양산하는 교육이다. 


신 노예 그룹은 학교에서 직장으로 그대로 전이되고 있다. 학부모들 만날 때면 가끔씩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직장에서 일을 하는지 아는가?,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기 위해 시키는 일 붙잡고 죽어라 한다. 사직서를 매일 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노예와 주인의 차이는 간단하다. 노예는 자기 일이 아닌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한다. 그 대가로 먹을 것과 잘 곳 등을 제공 받는 게 노예다. 우리 사회의 신 노예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노예를 양산하는 또 하나의 기재는 스펙으로, 10대, 20대 청년들이 집중하는 일이다. ‘스펙’은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다. 원뜻은 ‘낱낱이 말하거나 문서를 작성함’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입학을 하거나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고, 2004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신어 자료집에 등록되기까지 했다. 원뜻과는 다르게 사람이 가진 ‘사양’이라는 뜻이 일반화 되어 있다. 




사양이라? 외국에서는 사람에게 이런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냉장고가 어떤 사양인지 고려할 뿐이다. 사람에게 어떤 사양이냐고 묻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신 노예를 양산하는 학벌교육과 스펙에 집중하는 한, 사회적 연대, 경쟁에 저항 할 수 있는 어떤 힘,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자신이 노예인지도 모른 채 노예로 사는 삶에 대한 성찰은 요원한 과제이다. 우리가 현재 해야 할 일은 ‘답정너’ 양산하는 교육을 뛰어 넘어 개개인이 주인으로서 연대하고 저항하며 함께 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어떠한 삶의 가치가 있으며 행복한지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