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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결핍의 자랑은 또 다른 착취가 아닐까

by 달그락달그락 2015. 10. 11.

공들이 모여 신세 한탄을 했다. 배구공이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졌는지 매일 귀싸대기만 맞고 산다.”고 하니, 축구공이 “넌 다행이다. 난 맨날 발로 까여 머리로 받친다.”라고 했다. 그러자 탁구공이 “난 밥주걱 같은 걸로 때리고, 깎고, 돌리고, 올리고, 정신없이 쥐어터지는데 아주 죽겠어.”란다. 


테니스공은 “난 흙바닥에서 굴리다가 어떤 땐 시멘트 바닥에서 털이 다 빠지도록 두들겨 맞는다.”, 야구공도 한마디 거든다. “닥쳐라. 난 매일 몽둥이로 쥐어 터진다.”고 했다. 


이 넋두리를 힘없는 눈으로 말없이 쳐다보고 있던 골프공이 한마디 하자 모두가 조용해 졌다. 골프공은 “네들, 쇠몽둥이로 맞아봤냐?” 지난 주 담임 목사님께서 성경공부 전에 재미난 이야기라며 해 주셨다. 찾아보니 인터넷의 유머 코너에 자주 올랐던 이야기란다. 


이야기 들으며 다른 관점으로 생각 하게 됐다. 청소년들이 학업에 대해 어려움 이야기 했을 때 몇몇 기성세대들이 골프공 정도 되는 이야기를 한마디씩 하곤 한다. 대충 이런 거다. “나 학교 다닐 때 지금의 너 때처럼만 해 주었으면 서울대 열 번은 갔겠다.” 이런 유의 골프공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을 꽤 많이 보아 왔다. 나는 예전에 이렇게 어렵고 결핍된 환경에서도 잘 성장해 왔는데 너의 풍족한 환경에서 무엇인들 못하느냐는 말이다.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유행하는 자기계발서에서의 관점도 살짝 돌려 보면 비슷한 모양새로 성공을 주장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결핍과 고통은 도약의 발판이고 예전에 성공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철저히 개인의 문제를 극대화하고 이겨 내야할 당연한 문제로 치부한다. 네 문제는 당연히 네가 해결해야 하며 그 문제는 너의 성공을 담보하는 중요한 기재라는 것이다. 


종교의 청소년관련 집회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앙 간증이라며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자신이 “청소년기에 심각한 어려운 삶을 살았는데 주변 둘러보니 나만큼 고생한 사람 없더라.”는 주장을 펴면서 강단 아래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너희들 힘겨움은 아주 작다면서 나도 이렇게 잘 이겨냈는데 그 정도도 못 이겨 내느냐며 강조한다. 그리고 그 정도 힘겨움은 쉽게 이겨내야 한다며 다그치는 듯 한 말씀을 지겹게 들어 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들 자살률은 OECD국가에서 1~2위를 다툰다. 6~70년대 상대적으로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사회적 문제까지 된 적이 없었다. 과거의 경제적 환경에 비할 바 없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목숨을 던질 만큼 아프고 힘겹다는 것이다. 


더불어 자기계발서류와 잘 못된 신앙 간증의 가장 큰 문제로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 즉, 구조적인 문제를 모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여 철저히 개인적 문제라고 강조하는 순간 근본적인 사회적 성찰과 진짜로 집중해야 할 일의 가치들을 놓치고 만다. 


사실 강연이나 간증에서 주장하는 자기 계발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가? 사람들은 자기 능력이나 취향과 조건은 모두가 다르다. 그 다름과 그가 싸여 있는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욕심과 욕망을 부채질하는 책과 강연들은 일종의 착취가 되고 만다. 


골프공만 힘든 게 아니다. 배구공, 축구공, 탁구공 등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는 너무나 힘들고 아프다는 것, 즉 누구에게나 아픔은 아픔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아픔을 공감해 주고 함께 해 주는 능력이지, 그것도 못 이기냐며 비아냥대는 게 아니란 것이다. 


테니스공을 골프공으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테니스공은 그 자리에서 박살나고 만다. 좋은 세상이란 자신이 테니스공으로서의 내구성과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지 갑자기 튀어 나온 골프공이 난 참으로 멋지다며 너도 쇠몽둥이로 맞아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계발 강연, 신앙 간증, 몇몇 교사들의 말 같지 않은 힘겨움을 이겨 냈다면서 아픔이 승전보의 토대였다는 그 많은 자기 힘겨움 그만 들이대고 배구공이나 탁구공 같은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해 주면 좋겠다. 너는 배구공이며 탁구공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며 내 할 일 잘하면서 서로 간 아픔을 자랑하는 게 아닌 끌어안아 주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10월13일 새전북신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