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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광야로 돌아가자

by 달그락달그락 2012. 1. 9.

애굽에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모세가 이끌고 나왔다.

광야에서 가나안을 향해 나아 갔다.

자유를 주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이들이 

광야에서의 삶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았다.

애굽의 노예생활을 그리워 하였고 급기야 우상숭배까지 저질렀다.

모세는 노했다.


출애굽 이후 히브리 민족을 이끌어 낸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간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출애굽'의 이야기다.

세 곳의 장소가 나온다.

애굽, 광야, 가나안.


대부분의 이들은 가나안을 꿈꾼다.

그 곳의 삶이 지상 낙원이라 일컫는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번은 반복해서 들었을 

설교에서도 가나안과 애굽의 차이를 강조한다.


광야는 힘겨운 곳이며 삶의 과정 가운데 넘어서야 할 곳 정도로 치부한다.


어제 대예배 설교 들으며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공간은

"애굽일까? 가나안일까? 광야일까?"

고민해 본다.


삶에서 이 세 장소에 대해 선택해야 할 일이다.

가나안을 묵시적, 명시적 이상사회로 이야기 한다 해서 광야 없이 바로 들어 설 수 있을까?

광야를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나안이 좋은 곳이라 알 수 있을까?


광야는 무조건 나쁜 곳일까?


그렇다면 애굽은 좋은 곳일까?

먹을 것과 잠자리가 보장되어도 싫다.

너무 싫다.

종의 신분이다.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수동적인 종의 삶이다.


현재 내가 추구하며 '종노릇'하는 것은 무엇인가?


광야는 어떠한가?

자유롭다.

먹을 것과 잠자리에 대한 보장이 없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온 백성을 위해 만나를 내려 주신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에 그 이상의 가치를 알게 하신다.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서게 해 주신다.


광야가 나쁜 곳인가?

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고 모세도 광야에서 깨닫지 않았는가?


삶의 성찰 없이 가나안이라고 우기는 곳에 접했을 때

인간의 추악한 모습들을 보아 오지 않았는가?

그 곳이 가나안이 아니면서도 인간들이 가나안이라 우기는

먹고 마시고 자기 정욕을 남발할 수 있는 곳이라 믿지 않았는가?


광야 없는 가나안이 가능할까?

신께서 왜 광야를 걷게 했는지 우리 안에서 깊이 묵상해 보고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곳은 광야일수도 있고 애굽일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선택해야 한다.


광야를 걷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나안만을 주창하며

자신의 안락함을 가꾸려 하는가?

가나안을 가기 위한 과정이라 강조하며 교회건물 안에서의

삶만을 강조하는 것이 올바른가?


지금 현존하는 우리 사회의 광야에서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무엇을 하는가?

이 세상에서까지 애굽의 삶을 가나안이라고 우기지는 않는가?


광야로 돌아가자.


나를 돌아 볼 일이다.

내 안의 나를 아주 깊이 돌아 볼 일이다.


광야로 돌아가자.


내적 성찰을 위해 그 안의 깊은 묵상을 위해

진실된 나를 찾기 위해 광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