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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신상 털려 즐거운 세상

by 달그락달그락 2011. 6. 6.

청소년의 실질적인 '시민참여'의 공간은 그들이 관계하는 책임과 권한이 함께 하는 곳이다. 현실의 사회 환경적 공간에서의 시민참여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시민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불완전한 목적을 지향하는 학생이라는 위치권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게 사이버 상에서는 네티즌으로서 권한이 크다. 인터넷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도구로도 사용된다. 90년대 인터넷보다는 PC통신이라는 용어가 주를 이룰 때였다.

 

"국민의 일원인 저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5개월간의 고등학교 생활은 제가 죄수들처럼, 개돼지처럼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규제되는 생활로 점철되었습니다.(중략)"

 

1995년 7월 22일 하이텔 게시판에 올라온 이 한 편의 글은 청소년 인권운동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발전했다. 춘천의 '최우주'군이 학교의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시행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내려다 절차상의 문제로 청와대, 교육부, 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출했으나 무성의한 답변만을 듣게 됐다. 그러나 하이텔 게시판에서 네티즌들은 뜨겁게 반응했고, 중고등학생복지회가 조직되어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게 되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이야기 할 때 최우주군의 문제제기는 자주 회자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만약 PC통신이라는 공간이 없었다면 이러한 논의의 과정과 사회적 이슈도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90년대 후반 인터넷에서 시작된 두발자율화 운동은 교육부로부터 학교별 토론회를 열어 두발규정을 개정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내게 했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 조직되었으며,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 커뮤니티, 18세 선거권 운동, 미국장갑차로 인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과 2008년 미국산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 등의 중심에 청소년이 있었다. 청소년의 중심적 참여의 수단은 언제나 인터넷이었다. 청소년 시민참여를 위한 도구로서 인터넷은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수평적 관계의 보편적 논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청소년들은 나름의 노력으로 자신들의 힘겨움과 아픔을 오프라인에 표출했지만 제대로 된 반응이 오지 않았았고, 이를 소통하는 공간으로 사이버를 선택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들의 아픔이 그대로 반응됐다.

 

이와 달리, 인터넷은 부정적 요인도 많았다. 카페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의 일방적인 논리와 통제가 가능하기도 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며 개설된 '타진요'와 같이 사실이 아닌 일방적인 주장을 매개로 하는 커뮤니티부터 연예인들의 안티 카페, 친구의 왕따를 조장하며, 담임교사를 험담하는 공간, 자살을 권장하는 사이트까지 많기도 하다. 운영자의 일방적 의견과 주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집단지성'의 기본 가치를 파괴하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이 대중화 되면서 반 폐쇄형 커뮤니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온라인 카페처럼 운영자가 회원의 의견을 삭제하거나 부각시키는 등, 조작하기 어려운 개방형 네트워크 체계다. 기존의 반폐쇄형 체계인 카페 형태의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는 개방과 공유 면에서 차이가 크다.

 

자의적 개방으로 인한 '관계 맺기'가 아닌, 순전히 타의적 개방으로 '신상 털기'가 유행하기도 한다. 신상털기는 연예인, 일반인 등을 네티즌들이 무차별적으로 신상을 알아 온라인에 배포하며 비난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개방성'과 '신상 털기'는 자의와 타의로 인해 전혀 다르지만 '공개'한다는 것은 일치한다.

 

개방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대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엉뚱한 질문일지 모르나, 자신의 힘겨움, 즐거움, 치부까지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나누는 세상이 된다면 어떨까?

 

앞서 언급한 청소년들의 힘겨움이 사이버상에서의 공감으로 세상이 작은 변화를 보였듯이, 우리네 모든 즐거움과 힘겨움이 긍정적으로 공유되고 지지되는 세상이 된다면?

사이버 공간이 우리들 대부분의 삶을 공개하는 곳이 된다면?

 

예를 들면, 다양한 정보를 알았을 때 취업, 수능 등 불합격의 아픔, 연인관계의 헤어짐, 육체적인 고통 등이 알려져 그 아픔에 대해 많은 이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신상을 털면 털수록 상대와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다. 바보 같은 상상일지 모르나 가능한 많은 이들이 신상을 모두 털려 자신의 가슴을 열어 보이는 세상이면 좋겠다. 아픔은 감싸 주어 감소시키고, 즐거움은 더 크게 나누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신상 모두 털려 즐거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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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8일 새전북신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