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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미국말을 잘 해야 하는 이유

by 달그락달그락 2011. 4. 12.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원 과정을 다시 시작했다. 공부 시작하며, 가장 염려 되었던 것은 어학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영어다. 석사과정 마친지도 7~8년 되었고 다시 영어 원서와 씨름하자니 힘겨웠다. 퇴근 후 자정이 넘는 시간에 지인인 영어 학원 원장께 부탁해 몇 달간 과외까지 받았다. 서울까지 오가며 쏟아 부은 시간과 힘겨움은 차치하고 영어원서와 미국에서 넘어 온 관련 책들은 많은 고통을 안겼다.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관련 연구내용과 현장에 적용하려 논의할 내용을 준비하며 고민하는 시간보다는 독해하고 발표할 내용을 만드는 시간도 버거웠다. 영문학을 하고 있는지 사회복지학과에서 청소년을 전공하고 있는지 고민이 많았다. 어느 날 강의 때 토론하다가 학과 교수님에게 질문했다.

"저희를 지도하는 교수님들의 연구논문들은 언제 보며 토론할 수 있는가? 영문학과에 온 건지 청소년을 공부하는지 혼란스럽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 인권, 참여, 정책, 역사 등 핵심적 내용에 논의하는 시간이 너무 작다"는 뉘앙스의 질문이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영어는 해야 한다.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외국의 다양한 논문들과 좋은 책들을 학습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나 이것이 대부분인 것처럼 공부해야만 할까? 나에게 있어서 대학원 공부의 본질은 영어가 아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교육, 인권, 사회참여 등의 실천적 연구에 있었다. 영어 문법 맞추어 가며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원서 독해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선택한 학교가 청소년 부분에 관련해서 많은 연구실적과 좋은 교수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선택했었다. 그 분들이 연구하고 발표했던 과정에서 더 깊은 성찰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교수님들의 훌륭한 연구물도 만났으나 소수였다. 모두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쏟아 부은 시간 가운데 영어독해 하는 시간이 많아서 아쉬웠다.

 

우리 사회 대학(원)에서 담당교수가 자신의 논문과 책으로 학습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분들이 대부분이시고 그 안에서 연구하신 내용들이어서 이해하는 부분도 있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외국의 다양한 좋은 논문들을 강조하나 우리 사회의 연구진들이 만들어낸 논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거기에 더해 요즘은 영어강의가 대세라니 할 말이 없다.

 

서울대신문에 실린 이광근 교수의 글이 함의하는 바가 크다. "우리 학술계의 역사가 중국이나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 하나. 우리는 축적되지 않은 역사, 단절의 역사라고 한다. 중국은 천년이상 축적된 책들을 지금도 읽고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고 일본은 서구와 동아시아의 학술성과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이 삼백년을 넘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르다. 나는 우리 조상의 기라성 같은 저서들을 읽을 수가 없다. 외국어(중국어)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상아탑이라는 곳에서 영어를 통해 단절된 과거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학교는 단연 카이스트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소속 학생들 4명과 교수까지 자살한 사건 때문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죽음의 배경으로 꼽힌 ‘차등적 등록금제’는 폐지로 가닥이 잡혔다. 하지만, 100% 영어강의제, 연차 초과자 수업료 납부제, 재수강 기회 3회 제한 등의 제도는 여전히 남아 학생들을 옥죄고 있다. 100% 영어 강의라?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말로 설명해도 단어 하나의 뉘앙스로 다른 내용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진이나 학생들 모두가 힘겨워 할 것은 자명하다. 교수와 학생간의 인간적인 접촉은 단절시킬 것이다. 카이스트의 박진현 교수는 학교 게시판에 “한국의 과학대표 대학 카이스트에서 자기 나라 말이 아닌 영어로 100% 학문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국가의 수치”라며 “체계적인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영어에 미쳤다. 과거 중국의 속국마냥 중국말을 잘해야 성공했던 것처럼, 미국말을 잘해야 성공하는 사회가 됐다. 누구를 위한 일일까? 아마도 영어를 잘하는 것으로 자기 잘난 상황을 설명해야 하며, 기득권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하는 자들. 연구와 성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 단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말 잘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세상은 아닐까?

 

http://www.youthauto.net/2814

 

 

 

# 4월13일 새전북신문 칼럼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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