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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아이들의 삶은 공평한가?

by 달그락달그락 2010. 4. 4.

우리들의 사고(thinking)는 누가 만들어낼까?

 

'사고(thinking)'는 우리의 몸을 지배한다. 내가 가진 사고라는 것은 배움에서 나온다. 많은 이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교육만을 생각하곤 하지만 배움은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10대 중반의 청소년이 가장 집중해서 배움을 갖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자. 학교와 더불어 친구사이, 인터넷, 텔레비전, 만화책, 게임, 부모 등 수많은 관계에서 그들의 사고가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한 아이의 배움에서 만들어지는 '사고'는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관계의 영역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중 청소년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매개체는 무엇일까? 부모인가? 교사인가? 아니면 또래일까?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다만 부모와 교사들의 영향이 과거에 비해 매우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부모와 교사보다는 또래관계가 더욱 클 것이고, 이러한 또래관계도 과거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사이버세계가 성장하면서 청소년들이 주도하며 관계 하게 된 수많은 준거집단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온라인과 통신이 연결된 수많은 준거집단, 예를 들면 수많은 동우회, 친교모임, 동아리모임부터 펜클럽과 함께 게임 산업까지 엄청난 성장이 이루어진 게 사실이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공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사고의 틀이 넓어진 것도 현실이다. 다만, 이러한 사고가 청소년들의 다양함 안에서 주체적으로 선별되어지기 보다는 이러한 콘텐츠가 성인들의 무차별적인 경제적 활용도구로 사용되어지면서 선정성, 상업성의 폐해는 고스란히 청소년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지난 졸업시즌에 졸업식에서 중학교 청소년들이 옷을 벗기고 밀가루를 뒤집어 씌우는 등의 여러 문제가 대두되었다. 언론에서 크게 다루며 청소년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엄중하게 꾸짖기도 하고 요즘 아이들 문제라는 투의 수많은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대안이라고 제시하는 일들이 성숙한 어른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지도를 하여 건전한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논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4~50대의 성인들 관점으로 아이들의 이러한 행태를 보면 당연히 문제가 많은 행태인데, 이들에게 더 큰 충격은 언론에 비추인 청소년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반적인 행태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10대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가 현재 만나는 청소년들은 과거 60~70년대의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청소년 세대가 아니다. 2010년의 청소년들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불과 10년 전에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에서 남녀가 키스하는 행위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인터넷이 발전하여 수많은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요즘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통신과 방송까지 연계되어 이동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소통하는 시스템이 구축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의 콘텐츠를 지배하고 있는 중심에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돈 되는 일이라면 서슴지 않고 수많은 일들을 저지른다. 상업성과 함께 극심한 선정성은 이미 안방의 지상파까지 넘어 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에서 한두 번의 클릭이면 20여 년 전에 구하기도 힘들었던 수많은 야동을 구할 수도 있다. 게임중독 때문에 힘겨워 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지원체계가 확장되기 보다는 게임 산업을 육성해 경제적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며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체계가 더욱 성장하는 환경이다. 또한 지옥 같은 입시의 강화로 인해 청소년들이 마을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방과 후 대부분 학원으로 이동한다. 학교와 학원의 구분이 어려운 세상이 되었고, 교사와 학원교사의 차이도 애매하게 되었다.

 

현재를 살고 있는 10대 청소년에게 과거의 환경과 관점으로 그들을 제단하고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반문하고 싶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모습의 원인은 철저히 우리 성인들이 제공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인들이 일방적으로 '너희 하는 짓이 잘 못되었다'고 계속해서 꾸짖으며 그들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길로 가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고쳐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결국 현재 청소년들의 문제를 일으키는 잘못된 사고(thinking)체계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우리 성인들에게 있다.

 

 

  가속화되는 불공평한 환경

 

  아동을 성폭행하고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김길태 사건은 우리사회 현재의 모순된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자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림받아 이름조차도 길에서 태어났다고 '길태'라고 지었다고 한다. 언론에서 보인 그동안의 삶은 일반적인 청소년기를 보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이미 교도소에 수감되어 갱생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또 죄를 저지르게 되어 결국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한 생명이 떠나고 말았다. 이 자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김길태라는 한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들여다 보면 "과연 사람들의 삶이 평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아이와 부모 잘 만나서 최고의 교육과 환경에서 끊임없이 좋은 것만 주입한 아이의 삶은 결국 다를 수 밖에 없다.

좋은 민주주의 국가는 이러한 불평등한 모순을 최소화하려 노력하는 국가라는 것은 자명하다. 근래 '무상급식'이 선거 국면과 맞물리며 정책적 화두로 떠 오른 모양이다. 모 당의 의원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좌파' 운운하며 또 색깔을 칠한다. 현재 우리 정부에서 자율과 경쟁을 중시한다. 이러한 자율적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평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 사자와 토끼를 풀어 놓고, 자율적으로 경쟁하라고 강요한다면 토끼에게는 이미 자율은 상실되고 만다. 사자에게는 좋은 세상이지만 토끼는 지옥 같은 환경일 뿐이다.

 

방학이 되면 기천 만원씩 하는 어학연수를 떠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먹을 게 없어서 음식쿠폰 받아 근근이 연명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복지시스템도 약자들을 더욱 대상화하는 체계를 곤고히 하여 빈곤의 삶이 악순환 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 무상급식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히 아이들에게 전해져야 할 우리 사회 생존권의 가장 밑바닥의 일이다. 만약 어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급식비를 내지 못 냈는데, 아이가 그것을 모르고 학교식당에 들어가려다가 지문인식기에 걸려 '삐'소리의 경고음을 들었다고 상상해 보자. 이러한 일이 교육적인가?

 

  불공평한 환경의 대안은 '주체적' 삶이다.

 

  모두가 사자가 되어 밀림을 지배하고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세상이다. 이러한 삶을 위래 노력하지 않으면 무능해 보인다. 나는 노루인데 사자다운 삶을 강요당한다면 그 노루의 삶은 참으로 힘겹겠다. 근래 고려대의 김예슬 양이 자퇴하며 학교에 내건 대자보에 희망을 발견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고 강조하며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고 주장한다. 또한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도 "대학은 나와야지"라고 한마디 거든 덴다. 결국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고 강조하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며 대학을 자퇴했다.

 

     인간은 자신들의 끝없는 탐욕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한다. 녹색성장이라 주장하며 땅 파고 헤쳐 가며 콘크리트 벽에 녹색을 칠하면서 녹색성장이란다. 초식동물에게 육식을 하게하고, 생태계를 파괴하여 인간의 욕심을 자극하여 성장하는 게 발전이라고 우긴다.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들은 계속해서 악순환하는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라며 너도 강자가 되어 약자들 위에 군림하라고 강조한다. '김예슬'양 또한 수년간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고 보인다. 불행히도 그렇게 강자의 대열에 들어서는 이들조차도 상당수가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 대기업의 임원들, 최고의 전문가라 하는 교수진들, 저명인사라 일컫는 자들의 자살을 상기해 보면 사람답게 사는 삶을 위한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현재의 우리 환경에서 학습의 사고(thinking)는 철저히 강자관점에서 만들어 졌음에도 그 자리에 올라간 자들 또한 불안해한다. 그들의 삶을 더욱 곤고히 하는 중요한 도구로 계속해서 또 다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나무'답게, '풀'답게, '사람'답게 사는 삶을 희망한다. 예슬 양이 주장했듯이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끊임없이 물어가며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이 글이 가장 중요한 대안으로 보인다.

 

사람의 삶이 어떠한 삶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며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주변의 모든 이들과 협력하여 나누고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한다. 내 아이 조차도 이 세상에 나온 순간 철저히 불평등한 환경에서 살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웃의 삶에 대해, 공생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삶에 대해, 남을 헤치고 가두고 빼앗으려는 경쟁의 삶에서 탈피하려는 끊임없는 고민과 학습가운데, 자신답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끊임없이 자기 주체적으로 공동체적 삶을 위해 성찰하려는 노력만이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인다.

 

http://www.youthauto.net/zboard/view.php?id=example&no=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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