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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소유와 존재 사이에서

by 달그락달그락 2010. 1. 1.

 

  한 달 전인가 출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자주 있는 일입니다. 사무실을 나가려다 노트북 가방을 보니 읽을 책이 없습니다. 어제 보다만 책을 집에 두고 온 모양입니다. 매번 이런저런 책을, 오며 가면 한두 장이라도 읽어야 마음이 놓이는 강박증 비슷한 게 있습니다. 사무실 나오며 기관 책꽂이에 있는 책을 뽑아 들었습니다. 책 제목이 '2.0세대를 향한 기성세대의 진실한 고백, 대한민국 청소년에게"입니다. 책안에는 강신주, 고은, 기세춘, 우석훈, 하종강, 홍세화 님 등 기라성 같은 현시대 열다섯 분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계셨습니다. 작년 청소년들로 촉발된 촛불집회를 바라보며 윤옥초 선생님께서 청소년들과 소통하고자 만들어낸 책으로 이해하고 기차에서 제 책인냥 줄긋고 메모하고 읽었습니다. 돌아오며 생각해 보미 기관 책입니다. 똑같은 책을 구입해 기관의 담당 선생님께 드리고 기관의 책이 제 책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근 7개월여 만의 휴일입니다. 책꽂이에 꽃아 두었던 '대한민국 청소년에게'가 빠끔히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한 장을 읽고 책장을 닫을 수 없습니다. 앞장부터 줄 그었던 내용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드림주식회사를 보고 인터넷에서 커뮤니티를 찾아보기도 하고, 기세춘 선생님의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강조하는 글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짐도 느끼게 됩니다. 국회에서 노동운동에 악제로 작용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직권상정 되어 통과되는 기사를 보며 하종강 선생님의 노동조합과 노동의 가치,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관련 교육의 소중함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해나가기보다는 기존의 생각을 계속 고집하려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합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내 삶의 지향을 규정하는 '내가 생각하는바'들이 어떤 경로로 내 안에 들어왔는지 묻지 않은 채 지금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간다면 자칫 내 삶을 그르칠 위험이 따르는 것입니다. p.44

 

머리가 좋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더 많이 구하려는 기술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비판적 사고가 작용할 수 없습니다. 비판한다는 것은 고작 자신이 생각하는 알량한 지식을 방어하며 자신의 이익을 더 크게 구하는 작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내 안에 생각을 집어넣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춰 나가면서 기존의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여 주체성을 확장하지 않으면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어렵습니다. p.47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인문사회학적 학습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줄 세우기 위해 답이 없는 학문에 답을 제시하게 합니다. 고민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직 잘 찍는 연습 시키고, 노동자의 권리, 시민의 권리, 국가의 존재 이유는 계속해서 사라지고 기득권층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계속해서 학습하여 인식됩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는 화두를 제기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성인들의 주류는 존재보다는 소유에 환장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존재에 대한 가치는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들이 수단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현재의 정부를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단지 소유욕을 끊임없이 자극한 현 정부의 홍보에 놀아나고 말았습니다. "돈 되는 거 다 해 주겠다는 거 아닙니까?",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겠다. 그 이상은 묻지 마라." 어제 노동관계법을 통과시킨 노동부 장관의 신년의 목적은 처음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일자리라고 강조합니다. 작년에 희망 근로 사업 등 많은 일자리를 정부에서 수조원 들여 만들어 냈습니다. 이번 해는 땅도 파고, 또 수조원을 들여 비정규직, 땜빵식 일자리는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질적인 수준과 지속성, 그 일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잘 '기능하는 사람'이 출세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기능인을 길러내기에 모든 힘을 쏟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일수록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꼭두각시이거나 노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인 다음에야 노예도 생각하고 사는 존재이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는 생각 없는 존재라야 좋습니다.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생각'하는 길밖에는 더 없습니다. p.90

 

어제 중앙대학교의 구조 조정안이 신문에 나왔습니다. 회계학이 전학과의 필수과목이며 과감하게 현실에 맞추어 통폐합하였다며 자랑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육성해야 할 곳이 상아탑이라 일컫는 대학이라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대학은 기능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우리는 소유하기 위해 생각 없이 사는지도 모릅니다.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누구의 지시에 의해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내 생각이 없으니 지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노예와 다름없습니다. 노예의 삶은 비참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적응하면 자신이 비참한 삶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그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에서 모세는 비참하게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킵니다. 해방을 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자신들을 식민지배에서 해방시켜 주었던 모세를 저주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과거 노예생활이 차라리 편했다고 여깁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돈에 노예로 살아가지는 않는지 고민입니다. 가슴이 답답할 지경입니다. 이러한 때에 기세춘 선생님께서 옮겨오신 화자(華字)의 글은 너무 큰 가르침을 전해 주십니다.

 

온전한 생명이 최상이고, 훼손된 생명은 그 다음이며, 죽음은 그 다음이고, 억눌린 생명은 그 최하이다. 이른바 억눌린 생명은 육욕(六欲)이 그 적합함을 얻지 못하므로 모두 싫어함만 남는다. 굴복이 바로 그것이요 수치가 바로 그것이다. 수치는 불의보다 큰 것이 없다. 불의는 생명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생명을 억압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억압된 생명은 죽음보다 못하다'(기원전 6세기, 화자華字)고 말하는 것이다. p244

 

생명이 죽는 것보다도 '억눌린 생명'이 가장 나쁜 것이라 강조합니다. 굴복, 수치가 그것입니다. 생명을 억압하면 억압하지 못하도록 존재하도록 맞서 싸워야 하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저 존재하기 보다는 소유하기 위해 존재의 의미를 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물질 욕, 소유욕에 눈이 멀어 철저히 굴복합니다. 현 시대 소유로만 점철되어진 우리 사회의 비참함을 알려야 합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이러한 소유로 인한 폐해와 함께 존재의 의미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사회 문제점들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분단, 친일독재, 군사독재로 이어진 잘못된 역사 발전 과정 전체를 통찰해야 합니다. p266

 

우리 근 현대사의 정확한 관점을 제공해야 합니다.

 

아버님, 제가 이곳에(지구별)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남은 세월, 새로 일 만들지 말고, 지금보다 더 욕심 없는 세상을 응시하며, 제 속에 피어오르는 이 희망과 낙천(樂天)을 끊임없이 나누다가, 말없이 소리 없이 흔적도 없이 아버님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p278

 

아……. 이현주 목사님의 글은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도로 내어드리는 것 밖에 없다는 '드림정신'을 제안하고 실천하고 계십니다. 존재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열다섯 분 선생님들의 글을 읽으며 관통되는 개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한 생명, 한 생명에 대한 사랑이었으며 그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 여깁니다.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받았으니 우리가 할 일은 도로 내어드리는 것 밖에 없다"

 

삶을 그렇게 살아야하는 당위(當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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