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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창조는 가치에서 나온다

by 달그락달그락 2008. 5. 7.

몇달 전 2008년 5월8일 한화 설악리조트에서 있을 한화그룹 승급자 연수에서

리더십 역량 부분에 '창의력'을 주제로 특강을 요청받았습니다.

비보이 등 청소년들의 다양한 문화를 중심으로 자기 가치에 대한 

의미를 중심으로 창조의 발현에 대해 정리한 원고입니다.

그림이나 각주 등이  보이지 않으니 관심 있는 분은 관련 자료를 

파일로 첨부해 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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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가치에서 나온다

 

글쓴이: 정건희

 

 

길을 가는 이유

 

아버지는 자칭 시인이셨습니다. 글도 많이 썼었고 집에 책도 많았었는데 술을 많이 드신 어느 날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청소년기 어느 날 술을 많이 드시곤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계신 날은 밖에 나가 놀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의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10대 초반 위인전과 여러 동화책 등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강압 비슷한 권유로 “방랑시인 김삿갓”등 성인들 대상의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아주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김삿갓은 멋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는데 목적지 없이 정처 없는 자신의 길을 찾아 갔습니다. 목적지 없는 정처 없음이 참으로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되었는데 김삿갓은 목적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안의 성찰을 위한 아주 정확한 목적지가 가슴 안에 존재했습니다. 우리네 인생과 연계해 보니 참으로 배울게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갑니다. 모든 이들이 삶의 길을 걸어갑니다. 길을 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내가 가기 위한 목적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의 경험상 삶의 길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까지도 삶의 길에 대한 최상위 목적지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말은 번드르르 유창 했지만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은 어떤 가치가 있는 삶의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넓고 판판하며 편안한 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끝의 목적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편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큰집, 고액 연봉의 안정된 직장, 예쁜 아내 등의 일반적인 생의 안정성을 찾아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 큰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가슴속에서 욕망하는 물질적 탐욕을 채우기에는 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으나 한계가 있었습니다. 군 제대후 지방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제대하고 들어간 학교이어서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또래 학생들 대상으로 자격증반 과외까지 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졸업이후 사회는 성실한 노력에 대한 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취업 이후에도 제 안의 저는 저를 무척이나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근래 대학 도서관을 가끔 갑니다. 학생들이 행정공무원 공부를 많이 합니다. 거의 반수 이상이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고생들이 공부를 좀 하면 대부분 교사와 학부모들은 교대를 입학하라며 권유 합니다.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야 하는 이유는 안정적이며 시집을 잘 간다는데 있다고들 합니다. 의사 중 근래 가장 각광 받는 분야는 성형외과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입니다. 산부인과는 잘 가려 하지 않는답니다.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수입이 적어서라고 합니다. 직업의 목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무원이 안정성만을 위하며 자신의 노동의 댓가로 그 안정성을 모두 바꾼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사가 안정적 직업과 결혼관을 위해 스승이 되었을 때 그 아래에서 배우는 학생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삶의 목적지는 자기 삶의 편안함에 있을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참으로 미진해 보입니다.

 

 

삶의 가치

 

길을 가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길은 목적지를 향해서 갑니다. 넓은 길, 포장된 안정된 길이 중요한 게 아닌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갈 수 있는 길이 중요합니다. 삶의 길에서의 목적지는 내 안의 가치입니다. 가치란 “어떤 사물·현상·행위 등이 인간에게 의미 있고 바람직한 것임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인간에게서 삶의 가치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삶의 가치를 놓고 생활 안에서 편안함을 찾기 위해 부던히 노력합니다. 가치가 생활에서의 일상적 편안함이 아닐진데 그러한 물질적 목적을 설정한 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스트레스는 가중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육적인 욕망을 만족시킬만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조용히 방황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철학책을 뒤적이던 차에 내 안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산다.” 10대 후반 참으로 그럴듯했습니다. 그래 모든 이들은 어차피 죽기 마련이지. 따라서 그 삶에서 후회 없이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겠다. 될 수 있으면 자유롭게 살아야겠다. 뭐 그런류의 개똥철학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유치한지요.

 

교사는 교사로서의 가치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교사의 최상위 가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가치라고 여깁니다. 그 가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전이됩니다. 같은 직종을 가지고 있어도 다릅니다. 어떤 이는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점으로 어떤 이들을 할 일이 없어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육체적 쾌락을 위해 즐기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똑같은 일이지만 그 안의 가치는 전혀 다르게 파급됩니다. 우리 안에 그 가치가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는 한 우리네 삶의 방향은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삶의 길에 나침반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평화의 가치

 

근래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보이(B-boy)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광고 등 상업적으로 많이도 내 보입니다. 불과 몇 년 전 가수 뒤에서 춤동작을 따라하는 정도의 백댄서라 칭하는 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외국의 굵직한 최고의 비보이 대회에서 상을 독식하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업적 성장과 외국에서의 성공사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성인들은 할 일 없는 청소년들의 그저 그런 하위문화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이 현실입니다. 그런 비보이에 배어 있는 의미가 평화적이며 안식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창조성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뭄니다.

 

제가 아는 비보이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1970년대 말의 뉴욕의 뒷골목은 흑인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뒷골목에 남미의 경제 불황으로 먹고 살기 위해 불법 이민을 온 히스패닉 젊은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흑인들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세력다툼으로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브레이크댄스를 할 때만큼은 서로 간 휴전을 맺고 공격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레이크 댄스를 하면서도 고난위의 춤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승리를 맛보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더욱 고난위의 춤동작을 만들어 상대에게 보이고 승패가 갈리게 되었고 배틀(battle)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비보이 팀 간 기술을 보이며 승패를 결정짓는 명칭을 배틀(전투)이라 합니다. 이러한 비보이 정신은 주체적이며 창조적일 수밖에 없다. 자유롭기 때문에 어떠한 구조적 틀이 있을 수 없으며 무대도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춤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함께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지하철 역, 거울이 있는 건물 로비, 불빛이 비추는 공원 등 어느 곳이나 그들의 무대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춤을 추는 바로 그 곳이 그들의 문화를 발산하는 세상의 중심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흑인과 히스패닉계 젊은이들의 배틀로 성장한 젊은이들의 춤을 우리 민족의 청소년들이 세계 최고로 성장하리라고는 그 당시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 청소년들이 열광하며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사회적 환경에서 간단히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입시 경쟁체제에서 자유롭게 무엇을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통로가 여기저기 모두 막혀 있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입시에 성공하라며 강요 하지만 그 성공의 최상위 대학이 그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에는 맞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친구를 경쟁상대로 힘겨운 일상사에 직면해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막연하고 불안한 미래가 예전 미국의 뉴욕 뒷골목의 청소년들의 갈등관계와 유사하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요? 한 가지는 닮았습니다.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린다는 것...이러한 막막한 환경에서 비보이(B-boy)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가치와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우리 청소년들은 그 안에서 열광합니다.

 

우리 비보이의 가장 큰 특징 한 가지는 성인 중 그 누구도 청소년들에게 교본따라 가르치지 않았고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기술과 내용을 채워 왔다는 것입니다. 있는 것 그대로 따라하고 달달 암기하여 모방하는 문화가 아닌 세계 그 어디에도 없는 춤동작과 기술들을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자발성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내 세계 제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보이를 위한 지역사회 공공기관의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간혹 청소년문화의집이나 수련관 등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있으나 매우 드문 현실입니다. 그러한 환경 가운데에서 이러한 비보이를 현재 우리 성인들은 마음대로 이용하기만 합니다. 지역의 축제와 이벤트에서 섭외 일 순위를 달리며 매번 메인 무대에 올리기 급급합니다. 또한 상업적으로도 많이도 부각시키며 활용하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현재의 환경을 비보이들은 좋아하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재즈댄스나 현대 무용 등의 예술문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속적인 활동 공간이 없다는데 있으며 상업적 코드가 성장하여 비보이 정신이 퇴색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화려한 동작이나 외모중심이 아닌 비보이의 자유롭고 평화중심적인 기본적 창조정신이 소멸되어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뒷골목의 힘겨움에서도 춤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정신(가치)은 평화와 자율에 따른 창조성에 있다고 보여지는데 말입니다.

 

차이의 인정

 

제가 지금까지 말씀 드린 비보이의 기원이나 가치는 또 하나의 억측일지도 모릅니다. 청소년들을 만나며 그들의 문화를 접하고 함께 한 이후에 제 안에서 정리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은 그저 브레이킹 댄스가 좋아서였다는 한마디면 모든 게 이해 될 수도 있습니다. “재밌다. 좋다.” 한 두 단어의 말이면 모든 게 정답일수 있습니다. 근래 청소년들의 핵심 키워드는 재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제 안에서 정립한 개념이니 편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 청소년에게 물어 본 후 상의합니다. 아이들은 묻습니다.

“재밌나요?”

대다수 청소년은 재밌으면 행(行)합니다.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의 재미의 가치는 주동적 참여에 있습니다. 참여는 주체성을 의미합니다. 내가 참여하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적 욕구입니다.

청소년들에게 비보이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면 “단순히 비보잉을 재미있어 했으며, 좋아했고 열심히 해서 다른 나라 청소년보다 잘했다.” 그래서 세계를 제패했다. 우리의 문화도 접목해 보았다. 그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긍정적 창조의 핵심은 기본적인 내안의 최상위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표현하고자 하는 매우 원초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자신의 표현은 긍정성을 발현할 수 있는 매우 원초적인 무기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개개인의 다양성에 의해 다르게 표현됩니다. 다양성은 창조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다양성은 우리 삶의 핵심 가치일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모든 것은 다양성이 존재 합니다. 쌍둥이일지라도 60억 인구 중에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후 우리에게 책임을 지라며 강조하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성의 억압에 의해 기계화 되어가며 획일화 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창조성이 말살되어지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우리는 군사독재의 환경을 접하며 수 십년간 억압받으며 살아 왔던 경험이 있습니다. 수백년간 조화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에 있었습니다. 유교적 조화의 중시는 다른 것을 인정하며 살자는 제 안의 가치와는 조금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문화일수도 있겠습니다. 현재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의 문화는 획일성을 강화합니다. 똑같은 머리모양, 똑같은 옷, 똑같은 답을 요구합니다. 입시기계를 양산합니다. 다른 것을 인정하며 창조성이 발현되기에는 억압적 환경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틀을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 내 삶에서 직장인이 된 후 창조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쉽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안의 다양성

 

제가 일년 남짓 몸담았던 첫 직업은 건설회사 감리원이었습니다. 1년 남짓 근무하고 그만 두었고 현재 이력서에는 그와 관련한 자격증, 직장 등은 올리지도 않습니다. 현재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와는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제가 배운 힘겨운 부분을 잊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입니다. 첫 직장에서는 뜨거운 가슴을 식힐만한 열정적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잦은 술자리와 할 일 없는 시간 보내기 상관의 좋지 못한 언행 등 제 안의 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청소년들을 가슴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적 가치가 제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아이들을 전도했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였습니다. 주변에 손가락질 받는 중학생의 어린 아이들을 모아서 짜장면도 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만나며 교회로 대려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 안에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만한 사건이 벌어진 후 모두 흩어졌습니다. 이 후 4~5년이 흐른 후 저희 법인건물의 1층에서 예전에 그 아이들 중 한명을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후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왔습니다. 예측컨대 조직폭력배 활동을 했었던 모양입니다. 가슴이 아리고 너무나 아팠습니다. 무언가 아이들에게 해 준다고 했지만 결국은 그 모습으로 다시 봐야 하는 저의 무능과 힘겨움은 그 당시 극에 달했었습니다.

 

초기 청소년운동을 하던 때였습니다. 2~3년을 아이들에게 헌신했다고 제 안의 저를 다독였습니다. 잠도 줄여가며 아이들을 만나고 동아리활동을 통해 문화를 발산시켰고 아이들과 끊임없는 토론에 의해 축제 등 다양한 문화활동과 토론회 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발산 했습니다. 지역의 유해환경을 차단해야 한다며 학교 교사와 태권도협회 관장단을 조직해 피시방 오락실 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주로 영업하는 곳을 개도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들의 주체성을 살려야 한다며 지역의 고교회장단을 조직해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 학교를 변화시켜야 한다며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동아리연합회를 구성하여 아이들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주체적으로 행하게 이끌었습니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몸이 많이도 허약해 졌었나 봅니다. 어느 날인가 저희 단체의 청소년동아리연합회 임원 아이들과 모임을 할 때였습니다. 청소년 간사 입장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마디 전하다가 아이들 앞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짧은 몇 년이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행한다는 내 마음 한 구석에 대가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가는 돈이나 인정 등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행한다며 수면도 제대로 못 취한 채 헌신하며 진행하는 여러 일들을 통해 그들이 변화되어가는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도 내 안에서 푯대로 삼고 있는 여러 위인들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거기에 꿰어 맞추고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월남 이상재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님, 마더 테레사 수녀님 등 가슴 안에 품고 있던 분들을 아이들의 변화의 푯대로 삼고 추동했던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꽤 했다고 자위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의도한데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제가 이야기 하던 도중에도 아이들 몇은 뒤에서 장난하고 있었고 휴대폰을 누르며 주위만 산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저 내 자신이 서러웠는지 어쨌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만 그 때의 경험은 나를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어느 하나의 기계 부품이 아닙니다. 타인에 의한 목적에 의해 재단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의 생산품도 아닙니다. 청소년은 생명 그자체입니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할 가장 중요한 대상이며 그 자체를 그대로 인정해 주어야할 당위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단지 내가 경험하고 생각했던 부분 중 상대에게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 소통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소통이 아닌 강요와 통제, 지시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목적을 위해 빚어낸다면 생명에 대해 무시하는 것이며 비정상적으로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에 대한 성장의 목적과 비전은 신(조물주)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지 일개 나와 같은 사람이 추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만 청소년들과 수평적인 관계와 수평적 대화를 행하며 최대한 정확한 관련 정보를 통해 전해 주어야 하며 끊임없는 소통을 해야 할 의무는 존재합니다. 동그란 아이는 동그랗게 네모난 아이는 네모 낳게 자라게 해야 합니다. 생명 그자체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네모난 아이를 동그랗게 만든다며 생명을 무시하고 강요하는 행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지금도 아찔합니다. 잘못된 가치관과 신앙에서 기인했다는 생각도 들어 더욱 다양성을 존중하고 깨닫는 개기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자신이 네모난지 동그란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도록 문화적 감수성과 다양한 환경을 통해 자발적으로 알아 갈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합니다.

조직의 가치

 

모든 조직은 저마다의 목적이 존재합니다. 긍정적 조직은 최상위 가치가 있기 마련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화 기업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한화 그룹의 가치 체계는 한화정신(최상위 가치)인 신용과 의리를 바탕으로 경영 이념 (신뢰, 존경, 혁신)을 실천하여, 인류의 발전과 삶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초일류 브랜드 달성이라는 그룹의 비전을 달성한다는 의미로 체계화하여 설명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경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가치 기준인 행동 규범과 가치에 합당한 인재(Right People)를 확보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인재상이 가치 체계와 상호 연동하도록 구성 되어 있습니다.

한화의 직원들은 이 가치가 자신의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일상적인 기업의 목적인 그저 그런 표어정도로 치부해서는 성장할 수 없으며 창조적 발상 또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직장의 목적이 단순히 노동의 대가로서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의 역할만을 행한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정적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공무원이 되거나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교사가 된 것과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조직체에서 행하는 일은 그 가치를 따라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 조직의 가치와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이 자기 안의 다른 가치를 숨기고 산다고 할 때 참으로 힘겨운 삶을 살 것 같습니다. 그러한 조직 가치에 대한 창조적 발상이 나올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한화그룹의 직원일 경우에 당연히 신용과 의리는 자기 삶과 연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며 가정 다음의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내는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최상위 가치에 따라 경영이념 “신뢰, 존경, 혁신”을 위해 현재 나 자신이 변화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에 대한 비전(vision)으로 “인류의 발전과 삶의 가치를 향상 시키는 초일류 한화브랜드 달성”과는 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비전에 따라 수행해야할 미션(mission)은 세가지로 구별됩니다. 당연히 이러한 미션을 수행할 인재상이 요구됩니다. “신의를 지키며, 창의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맡은 분야에 최고의 전문성을 지니며, 국제적 감각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인재상이 나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요?

 

학교에는 급훈이 있습니다. 교단 위에 항상 걸려 있습니다. “착한사람이 되자, 애국심을 갖자, 공산당을 물리치자” 등 수년간 학교에서 보아온 급훈은 나와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근래 급훈도 청소년들의 생활세계와 관계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몇몇 급훈은 입시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엄마가 지켜본다”,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입시공부와는 철저히 관련지어 놓고 있으나 그 이면의 가치는 이곳에서도 존재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전과 다른 한 가지는 성인들의 일방성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재치가 살아 났다는 것 정도입니다. 대학이라는 수단이 한 학급의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자기삶의 가치에 의한 창조성

 

청소년들의 생활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제 삶의 가치는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청소년관련기관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방과 후에 청소년관련 기관에서 학습, 활동, 급식 등을 지원합니다. 이후 집에 보내고 그 이상의 활동은 없습니다. 이러한 일은 저 아니어도 어떤 이들도 행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의 삶에 들어가게 되면 전혀 다른 세계가 보입니다. 동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공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삶을 공유하며 공감합니다.

그들의 아픔이 제 아픔이 되기에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그 아픔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당사자와 해결점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한 생명의 삶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가치가 있음을 믿습니다.

이 일이 힘들어도 그 안의 소중한 의미가 있기에 제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가치가 여러분 조직에 스며나며 그 조직의 가치와 일방통행이 되어지는 그 삶이 참다운 가치 있는 삶임을 믿습니다. 그 가치의 일방통행이 일어날 때 그 삶은 새롭게 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창조성이 발현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내가 속해있는 조직체를 바라보게 된다면 그 삶의 대부분은 돈의 가치에 점령당하고 맙니다.

 

어느 기업이나 단체 등 긍정적 조직의 가치는 매우 이상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상적 가치가 내 삶의 가치로 연계되어 실제적인 삶의 긍정적 추동체가 된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창조적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쟝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의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먹고 사는 데에 급급해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때에 동물들과 다름없는 비참한 시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능과 이성과 감성에 따라 살아가지만 그 삶의 본질에는 우리 모두의 시간에 의미가 존재합니다.

“의미가 없다는 말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라는 그 의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의미는 삶의 가치에 사랑이 있을 때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가치의 부여”

삶을 살아가는 당위임을 믿습니다. 운전을 하는 직업을 가지더라도 그 삶의 의미가 내 차에 타는 사람들의 행복에 있다면 그 운전사를 만나는 많은 이들은 행복해 집니다. 커피를 파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향을 내는 커피를 만들고 깨끗하고 아늑한 공간을 제공하며 편안하게 해 준다면 그 커피숍을 찾는 이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정적인 직업 이전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한가지로 아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그 삶의 의미는 충분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에 공통된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에 관통되어지는 절대적 가치일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일들이 사람에 대한 일들이며 그 가치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 또한 사람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한 그 사랑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의미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여기에서 창조성은 발현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가치의 정점을 실현시키기 위해 당연히 행해야할 일이라 믿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 일? 밥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청소년운동, 시민운동, 사회사업 등의 NGO, NPO 의 조직활동과 기업의 공통분모를 찾으라면 저는 어린왕자의 이 글에서 찾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물론 본질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린왕자의 문구는 현대 사회 사람과의 관계들을 잘 보여줍니다. 사람 간 관계의 단절과 부재로 인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그 관계의 본질적 회복을 위해 다양한 민간단체가 활동합니다. 관계의 회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업 또한 천문학적으로 쏟아 붇고 있는 광고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비영리단체와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익활동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러한 공익활동을 민간단체에서 행하는 공익활동으로 인식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이러한 광고 이전에 고객에 대한 진실함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미 기업에서 가지고 있는 가치를 실제적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한화의 최상위 가치인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신뢰, 존경, 혁신을 실천하여 인류의 발전과 삶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원대하고 자기 삶의 기본 모토가 될 수 있는 가치입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삶의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입니다.

고객에 대한 사랑이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무조건적 이윤만이 아닌 그에 따른 대상과 삶의 가치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고객에 대한 사랑을 이루는 방법은 모든 이들이 만들어 내는 긍정적 가치에 따른 창조에 있음을 믿습니다. 가치에 따른 창조성의 발현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작년 지역의 대학에서 전국 환경·시민운동가 대회가 있었습니다. 첫째 날 토론회 때 패널로 참여한 문정현 신부님께서 사회자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의 중심이 어딘지 아느냐?”,

그러자 가슴, 배꼽, 머리 등 여러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문 신부님께서 설명하기를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 중에 아픈 곳이 생기면 모든 신경들이 그 부분에 집중하기 때문에 아픈 곳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세상의 중심도 마찬가지로 아픈 곳 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항상 세상의 중심에 있노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저는 청소년들에게 세상의 중심에서도 더 가치 있는 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안정성이나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상의 주변부에서의 삶도 있으나 그것을 위해서만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내려놓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를 위해 삶의 역주행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험성도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주변부의 안락한 삶도 있을 수 있으나 힘겹지만 세상의 중심에서도 사랑을 통해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게 변할 수 있음을 증명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중심에 서는 게 어쩌면 이 시대에 진실 된 성공일 수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기업의 가치도 여기에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순한 이윤추구를 위해 물불가리지 않는 조직이 아닌 그 기업이 성장할수록 시민들의 삶이 낳아진다는 의식을 갖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 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네 삶도 성장한다는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마케팅 비용은 그리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근본 가치에 최선을 다하면 될 것입니다. 고객이 물건 팔기위한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능동성을 발현시킨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업이 대상으로서 시민을 인식하지 않고 기업의 주인으로서의 페러다임을 갖는다면 많은 것들이 변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체성에 따른 대상의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세상의 중심은 어디인지요?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서 계십니까?

 

세상의 중심에서 본질적 가치를 외쳐보시지는 않으시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이 꿈꾸는 그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창조는 가치에서 나온다(정건희 원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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