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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수동성을 강요하는 사회

by 달그락달그락 2008. 5. 11.

근래 광우병 사태에 온 나라가 들썩입니다.

그 중심에 청소년들 소통과 참여에 의해 다양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가치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청소년들을 만나며 느꼈던 부분을 작성해 봅니다.

이번주 군산뉴스 정건희의 청소년칼럼에 실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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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성을 강요하는 사회

 

정건희 관장 (군산시청소년문화의집)

 

우리사회에서 10대의 청소년이 학생이라는 위치를 갖게 되면 그 때부터 국민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는 대부분 박탈되고 만다. 대다수 성인들의 암묵적 동의를 얻은 박탈이다.

 

근래 광우병 파문의 중심에 청소년들이 있다. 이들 10대에 대해 정부부처와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논평이 쏟아졌다.

 

지난 8일 한승수 총리는 대정부 질문에서 “국민이 알지도 못하고 길거리에 나온 것”이라며 왜곡된 사실에 선동돼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교육부장관은 “잘못 알려진 사실에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각 시도 교육청에 적극적 생활지도를 지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가관이다. 모 고교에서는 강당에 학생들을 모두 넣어 놓고 “너희들이 뭘 아느냐?”며 나무랬다고 한다.

동아일보의 10일자 인터넷 기사에서 전문가라 이름 붙여진 모 대학 교수는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하고 함께 뭉쳐 참여하는 것이 오빠부대와 비슷한 행동양식이다.”이라고 말했다. 이 분은 추상적인 감정에 연예인에 빠지듯 광우병에 특히 여자 청소년들이 많이 빠졌다며 강조한다.

국회와 교육관계자, 관련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을 감수성 예민한 수동적 존재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청소년들이 광우병에 대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보수(?)언론 등에서는 친북좌파, 전교조 등의 배후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논조를 지속적으로 펴고 있다. 논조의 핵심은 앞에서 모 교사가 고교생들에게 집단적으로 던졌던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다.

“니들이 무엇을 아느냐?”

청소년은 철저한 수동적 존재이지 이들에게 국민의 한사람으로 인식될 수는 없다는 기준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미국소 수입에 대해 불과 1년 전에 논조를 180도 바꾸어 이야기 하는 조중동의 배후세력이 더 궁금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청소년들의 배후세력과 조중동의 배후세력은 일치하는 것 같다. 우리 청소년들이 밖으로 나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조중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가짜 보수집단의 배후세력은 바로 현재 청와대와 정부여당일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정권 인수 작업부터 10대들을 가장 힘겨운 환경으로 내몰았다. 입시제도의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오렌지 단어 하나를 들먹이며 사교육을 급 성장시켰고, 야간자율학습 등 그동안 불법이라 이름 지어져 있는 여러 관행들이 합법화 되었으며 학교와 학생 서열화가 강화되는 등 힘겹기만 한 불평등한 경쟁체제를 더욱 강화시켰다. 거기에 재수 없이 걸리면 죽을지도 모르는 소고기까지 미국에서 가져와 먹인다고 하니 불만이 터질 만도 하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청소년도 국민이다. 학생은 신분권에 불과하다. 학생이라는 덧말을 붙여 민주주의 전체를 훼손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알 권리가 존재하나 정부정책 부분에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모르기 때문에 올바르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주체가 정부와 교육당국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참여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이다.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참여하고 소통해야 하는데 오히려 10대들을 둘러싼 대부분의 환경은 더욱 알 수 없게 담을 쌓고 책상 앞에만 두려고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더군다나 너희들은 미숙하기 때문에 참여조차 안 된다고 강요한다. 과연 우리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만족할만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만한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따라서 참여와 소통은 민주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의 원칙은 전체 국민 중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진 국민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진 국민들이 최대한 ‘배제되지 않도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니들이 뭘 아느냐?”며 나무랐던 교사에게 “학교에서의 민주주의 교육은 책상 앞에서 답을 달달 외어 시험지에 찍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든 설명해 주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10대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헌법 21조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2항)"는 글이 헌법에 적혀 있다.

 

“10대 연령층의 학생도 사람이다.”

“10대 연령층의 청소년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말을 언제쯤 반복하지 않아도 될까?

5월 - 군산뉴스 (수동성 강요하는 사회-정건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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