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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by 달그락달그락 2004. 12. 22.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지금 현존하는 우리 고교 학급의 급훈입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도 변화한 양태이지만 내용 자체를 이해하면서 많은 아픔을 전해 받습니다. 80%가 넘는 대학진학률인 나라입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대학이라는 곳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를 고민해 봅니다.

▲사진자료

최근 한 고교에서 진로에 대한 강의 요청이 있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의 목적은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거였습니다. 학교선생님이 된다든지 의사, 공무원 등 진학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러한 직업을 위해 대학에 가야한다는 청소년들은 또 몇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류대학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긍극적인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대다수 청소년들은 “돈 잘 벌어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모두 이러한 꿈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마음이 아파 오는 건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사회는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학교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성적으로 판가름 납니다. 내가 올라가려면 주변의 친구는 내 밑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열을 가리는 것 또한 불공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열 자체를 모두 성적으로 판가름하기는 하는데 그 성적을 내는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잘 외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외는 것도 어떤 아이는 먼저 알려주고 다시 한번 외게 하고 어떤 아이는 먼저 알려주는 사람 구할 돈이 없기 때문에 한번만 학교에서 알려 주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됩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면 3~40미터는 먼저 앞서있는 형편이죠.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3~40미터를 뒤에서 달리던 아이들은 나중에는 자신의 몸이 너무 지쳐 도태되는 형국입니다.

생존경쟁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합니다. 교육자체를 인적 자원으로 판단하는 수준까지 왔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사람은 혼자살 수 없을진데 갈수록 “내가” 이겨야만 된다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나도 이기고 상대도 이길 수 있는 방법도 많을 진데 그 방법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경쟁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최근의 수능부정행위 기사를 접합니다. 가슴이 내려앉는 저와는 상반되게 아이들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은 모양입니다. “양심보다 현실이 앞선다”, “더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한겨레신문 12. 12)라며 자신도 돈만 있었으면 가담했을 거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합니다. “인생결판”의 때는 수능이라고까지 전합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가담한 청소년들의 문제를 부각시킵니다.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아이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공범임을 밝혀야 합니다. 사회에 부정행위는 너무나도 만연해 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매일 전해지는 뉴스 몇 꼭지만 보시기 바랍니다.

교사와 부모들이 하라는 데로 공부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배우고 좋은 대학 나오신 분들이 주로 계시는 국회의 모습을 보면 민주적 의사구조가 어느 정도이며 세상에 널려 있는 비리가 얼마만큼이나 많은지 여실히 아실 수 있을테니까요.

예수에 대한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입니다. 시대의 민중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말씀은 성경과 역사책에 잘 나와 있으니까요. 이 사건 때문에 지금도 사지에서 목숨을 걸고 선교라는 명목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는 분들도 계시지요. 그런가 하면 그분의 이름으로 자기 교회건물만을 넓히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사실은 역사의 한 부분일 뿐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사, 정부기관, 단체나 모임 등에도 목적이 모두 있습니다.

그 조직의 목적이 삶 자체가 되어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육의 목적이 비슷한 양상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성 함양이라든지 인성, 민주적 의사구조 등의 수많은 목적은 나열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행하는 일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잘 외워 일류대학 가라”는 것이지요.

세계 식량에 대한 통계자료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매일 5만명 정도가 굶어서 죽는다고 합니다. 전체인구의 20%정도가 굶주림에 허덕이며 힘겨워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통계치를 보며 자신이 끼니때마다 식사하는 것에 부끄러워 하며 작은 돈이라도 매달 어려운 분들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세금을 엄청나게 횡령하고 법정에서 29만원밖에 없으니 알아서 하라며 골프하러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 자녀들에게 함께 사는 방법을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29만원 밖에 없지만 내 자식은 몇십억씩 어딘가로 주어서 범죄자를 만드는 일들은 이제 그만했으면 합니다. 국민을 위한다며 입으로는 이야기 하지만 궁극적으로 행하는 일들은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은 그만했으면 합니다.

교육은 “나”만을 위한게 아닌 “우리”모두를 위한 “전인적인 인간”을 키워내는 거라며 이야기하듯이 그러한 교육이 선행되어졌으면 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일류 대학생 친구들과 별 차이 없는 인간임을 알려주며,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닌 함께 사는 곳이라고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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