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활동/청소년자치공간_달그락달그락

청소년의 정치사회참여와 포르노사이트

by 달그락달그락 2007. 2. 4.

   생산자와 소비자가 뒤섞인 UCC(User Created Contents·사용자 생산컨텐츠)는 현대 사회의 다양성을 대변하는 소수의 힘으로 보인다. 그 힘이 왜곡되지 않는 한 UCC 본래의 순수성은 보장된다. UCC를 왜곡하여 악용하는 것은 이를 만들어 내는 일반 시민이나 청소년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청소년이 모 대선후보를 악의적인 내용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사이트에 올렸다고 하자. 이 동영상이 어느 정도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조회수가 10만회 이상은 돼야 한다. 그렇더라도 근래의 유행하는 마빡이 동영상이나 기타 여러 내용에 의해 순식간에 묻히고 말 것이다. 이러한 동영상이 악의적으로 왜곡돼 성장할 수 있는 길은 간단하다. 신문사나 방송에서 올려놓고 강조 하던지 대형 포털 업체의 메인에 걸어주는 것이다. 이때부터 UCC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 생산과 소비의 혼용이 아니며 소수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내용도 아닌, 단지 미디어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소비의 대상만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소수의 다양성이 미디어에 의해 왜곡되어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몰려가게 되는 것이다.

 

   지난달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7년 공직선거법상 UCC 관련 적용규정을 발표했다. “선거권이 없는 19세 미만은 특정 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내용의 UCC를 게재, 배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단지 콘텐츠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10대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선거 참여 자체를 제한했다. 18세가 되면 세금도 내야하고, 결혼도 할 수 있으며 군대도 갈 수 있고 공무원에 임용될 수도 있다. 다만 선거권만 없다. 세계 140여 개국의 국가에서 18세 이하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과 여러 경제 사회적 내용에 대해서는 잘도 비교하여 순위를 매기는데 유독 청소년들의 사회·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인색하기만 하다. 우리나라도 협약을 맺어 준수해야 하는 UN의 아동·청소년권리협약에는 결사의 자유, 평화적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모두가 제약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소신을 이야기 할 수도 없으며 학칙에 대해 토론하고 제안 할 수도 없고 잘못된 사회상황에 대해 집회를 할 수도 없다.

 

   이러한 10대에게 인터넷상에서 또 금지하는 대표적인 것이 있다. 음란물인 포르노다. 법적인 한도 내의 포르노 상영이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성인방송이라고 이야기 하는 다양한 성인 동영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성인영화를 10대가 볼 수 없도록 한 이유는 성적인 묘사가 많이도 왜곡되어 있어 자칫 잘못된 성 가치관을 가질까 해서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터넷 몇 번 클릭이면 포르노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으며 고교생 정도 되면 포르노 한번 정도 보지 않은 청소년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만연해 있는 게 현실이다.

 

   청소년들에게 포르노는 정치·사회 참여권과 유사한 점이 있다. 포르노와 정치사회참여가 현실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명하게 다른 점이 존재한다. 포르노는 상당히 많은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정치·사회참여는 별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포르노는 정신적으로 유해한 환경을 제공하지만 청소년의 정치·사회참여는 전혀 다른 문제로 이해될 수 있다. 오히려 선거 등 정치참여를 통해 민주시민교육으로서의 장으로 유도해 젊은 층의 정치참여의 확대를 꽤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청소년을 시민권적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포르노와 혼동하지는 않는지 의문이다. UCC 또한 청소년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도구를 정치와 사회참여의 소중한 기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아예 차단하는 이유를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2002년 독일의 안나뤼어만은 19세에 독일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미국 뉴욕의 발라트시의 제이슨네츠키라는 청소년은 1999년 65세의 현직 시장을 물리치고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우리는 2007년 1월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인터넷상에서 정치참여를 아예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야 말았다.

 

  작년 5.31선거를 기점으로 몇몇 청소년단체를 중심으로 정책제안을 위한 청소년운동본부가 꾸려졌었다. 각 당에 청소년들의 선거와 정치참여에 대해 여러 질문을 했었는데 모당의 정책의장이라는 분께서 “청소년이 선거하면 정치가 오염된다”고 하시며 “청소년은 정치적 판단능력이 없다”며 강조했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근래 선거법이 만들어지는 것만 같다.

 

  이 어른의 말처럼 우리 청소년들의 정치적 판단능력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또 안나뤼어만이나 제이스네츠키 보다도 우리 청소년들이 뒤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발 청소년들의 정치·사회참여와 포르노를 혼동하지 말자.

 

 

---------------------------------------------------------------

 

이 글은 새전북신문사의 요청이 있어서 쓴 칼럼이며

신문사와 중복개제합니다.

원문: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