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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방법

by 달그락달그락 2004. 2. 1.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방법



현대사회는 혼자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중학교 시절 생물시간에 양파의 껍질을 벗겨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기억이 있다. 수십 개의 긴 육각형 모양이 벌집처럼 모여 있었고 각각의 육각형 안에는 핵, 세포질, 세포막 등이 보였다. 이것이 세포란다.

인간의 뼈는 206개, 골수는 2,000억개라고 하며 피부조직 등 다른 수많은 조직들이 모여서 한 명의 사람을 만들어 낸다. 그 수많은 조직이 내몸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의 많은 유기물 또한 수천 만가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람의 육체적 조직에서 하나라도 잘못되면 문제가 된다.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사회에서 산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가족으로부터 유치원, 초등하교, 중·고·교, 대학, 사회에서의 직장생활까지 모든 부분들이 조직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가 국가라고 인정하는 이 구조도 거대한 조직의 한 부분일 것이다. 구조적으로 혼자살 수 없는 것이 현대사회이다. 때문에 초·중·고교 때의 공동체적 인성함양의 교육적 틀은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구조적으로 나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 성장만 강요하는 학교교육

우리나라에서 자아정체성이 형성(많은 학자들이 그런덴다)되어지는 청소년시기의 조직세계의 중심을 보면 가관(可觀)이다. 미래 사회적으로 조직적 환경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중·고교 청소년기에 우리 아이들이 행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잘 외서 잘 찍는 방법이다.

내 앞에 누구도 있어서는 안된다. 성적이 가장 우선시 되어지며 가치적으로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체계 즉 공동체에서의 삶을 살도록 유도하는 교육적 내용은 있을 수 없다. 물론 학교의 학급이라는 단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친구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학교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겪지만 과거와 달리 요즘 기업부터 모든 성인 조직에서 강조하는 것은 팀웍과 그에 따른 공동체적 리더십을 중요시 한댄다. 시너지(synergy) 효과를 최대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혼자서의 독단적인 일들과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현재의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요즘 일반론인 듯 싶다. 개인적 성장 뿐만 아니라 조직적 성장을 함께 이끌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우리 학교는 나 혼자 앉아 공부해서, 나 혼자 시험 잘 봐서, 내 성적 높여서, 좋은 대학가서, 좋은 직장 들어가면 그만이다. 학교선생님들은 사회성 대인관계 등 무수한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적인 틀 안에서는 내 것을 주지 마라고 한다. 오직 그 조직사회에서 승리해야만 살아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대통령이 자신의 재신임을 묻는다고 한다. 국민을 위한 가장 큰 무기로 청렴성을 내 걸었던 참여 정부의 어려움이 크게 보인다.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결정이다.

그에 대한 무수히 많은 말들이 언론에서 쏟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의 국정에 대하여 과거 정권에 비해 그렇게 커다란 착오가 없었음(?)에도 사회 전방위에서 공격을 받아 왔었다. 한국갤럽의 최시중 회장의 말이 현재의 노무현 정권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 같다. ‘노 정권은 누수될 권력조차 없다’ 고 했던가.

국가라는 공동체 조직을 놓고 대통령 개인을 위한 모험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국가의 대통령이기에 그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깊은 고민이 있어 보인다.

국민이 주인이라고 떠들어대는 국회에서 금뺏지 달고 계신 분들이 수도 없는 이야기를 쏟아 내지만 정작 자신의 금뺏지를 담보로 국민에게 심판을 맡긴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최소한 노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그 권위를 위해 국가라는 공동체 조직을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시민사회로의 권력이동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확실한가 보다. 조직체 안의 일인 중심의 권력 중심이 아닌 함께 하는 공동체적 의식에서 다양한 내용이 이해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성장도 함께 배려해야

어쨌거나 우리의 다양한 조직에서 원초적인 근본 목적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공동체의식 없는 조직사회의 획일적인 내용만을 강요해서는 현재의 국회에 계시는 분들의 자신들만을 위한 국회가 되고 말 것이다.

즉, 서로에게 배려하고 함께 함으로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성장도 함께 배려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내 것만을 취할 수는 없다는 것, 따라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내 것을 조금이라도 더 내주며 함께 할 수 있는 조직사회, 그리스도가 공동체를 형성했을 때 제자들을 사랑과 섬김으로 이끌어 냈던 조직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 텔레비전의 공익광고 중에 아이스크림을 아이들 수보다 작게 주고 먹을 사람을 선정하라며 나가는 교사가 있었다. 그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누어 먹든지 내가 양보하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을 먹기 위해 서로간 논쟁하며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 때 그 누구도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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