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한 시간이나 들여 누구도 안 읽을 것만 같은 글을 하나 썼다. 카뮈, 실존주의, 부조리, 이방인까지 재미없을 법한 요소들을 모조리 끌어왔는데, 끄적이다 보니 좋았다. 역시나 ‘좋아요’가 10개를 넘지 못한다. 그럴 줄 알았다.
밤에 다시 읽으니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아 보이지만, 끄적이는 그 순간은 좋았다. 내가 너무나도 부조리한 인간인데, 그 부조리를 의식하면서 사회적 각본에 적당히 묻혀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또렷하게 인식하는 순간을 글로 마주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 ‘그럴 줄 알았다’는 안정감이랄까?

늦은 오후에 은파호수공원을 산책했다. 아내가 웃으라고 해서 웃었더니 이 사진이 나왔다. 하늘은 파랬고, 바람은 말없이 모든 것을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그 아래 잔잔히 번지는 파란 파스텔 톤의 호수 물결은 웃음기 가득한 시골 소녀의 미소 같았다.
오늘부터 매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써 보기로 했다. <나를 이해하는 가이드>라는 제목도 붙여 봤다. 많은 이들 만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나였다. 반백 년도 넘게 살아왔는데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직도 혼란스러운 때가 많다.
오늘은 어떻게든 아무것도 안 해 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 날이다. 좋았던 것? 호수공원을 산책하고,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고 샤워한 뒤, 가족 모두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요즘 ‘무가치(?)’ 드라마도 한 편 봤다. 이유 없이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았다.
내가 나를 아는 일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데도 너무나 방기해 왔다. 언제든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면서 계속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이 강박도 지겹다.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마음이 편해지는 상황, 뿌듯함이 올라올 때 등 수많은 순간이 있다. 이제는 그 순간마다 내 감정과 몸의 반응을 조금씩 기록해 보려 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뿌듯한 날이다.
'일상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 삶의 우선순위 (3) | 2026.05.12 |
|---|---|
| 나에게 안정감은? (3) | 2026.05.10 |
| 프레지아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3) | 2026.04.09 |
|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는 이유? (4) | 2026.03.25 |
| 오늘도 또 하나의 소중한 점을 찍었다 (6) | 2026.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