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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이야기

오늘도 또 하나의 소중한 점을 찍었다

by 달그락달그락 2026. 3. 3.

11시 다 되어 퇴근하고 문을 열었는데, 막내가 힘이 없다. 꼭 안아 주고 오늘 학교 첫날이었는데 어땠니?” 물었더니 피곤해. 나 잘래라고 한다. 다시 안아 주고 방을 나왔다.

 

현관 바로 옆이 막내 방이어서 매번 문 열고 들어가서 나왔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아이가 나와서 왔어요라며 인사해 준다. 그럼 아이를 꼭 안아준다. 싫지 않은 눈치다. 큰아이는 자기 방문 열어 놓고 언제나처럼 책상에 앉아서 책만 본다. 가끔 일어나서 아빵 왔어?”라고 한마디 하고 다시 책상에 앉는다. 아내도 나온다. 왜 맨날 늦냐고 또 한마디 하신다.

 

거실에 앉았다. 지금까지 거의 초재기(?)로 일했다. 오늘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정신 차리고 스마트폰을 열었다. 간만에 페북에 들어왔는데 '과거의 오늘'이 뜬다. 7년 전 오늘 막내가 나에게 편지를 줬던 내용이다. 지갑을 꺼내 보니 그 편지가 한쪽에 놓여 있다. 7년 동안이나 내 지갑 속에 있었던 사랑이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고 건강하게 사세요. 나랑 같이 매일매일 놀아요.”라면서 고민 있으면 다인이한테 말하세요. 사랑해요!”라며 쓴 이 편지. 당시 많이 아팠다. 몸도 좋지 않았지만 심리적으로도 거의 바닥을 길 때였는데 가장 큰 위로를 줬던 친구가 바로 막내다. 얼마나 큰 힘이었으면 그 편지를 지금도 지갑에 가지고 있을까.

 

 

14년 전 오늘 나는 교육청에서 강의를 했고, 11년 전 서재를 정리하면서 책을 버리기 시작했다. 10년 전 오늘 새벽에 출장 가면서 인력시장 인부들을 보면서 일의 힘겨움을 고민했고, 서울에서 군산의 달그락에 찾아온 대학원 연구방 선생님과 대화도 했다. 9년 전, 백조는 물속 다리를 저어야 하는 게 중요하지 보이는 우아함만 내세우다가는 망한다는 논리의 비영리 조직에 대해서 글을 썼고, 8년 전 오늘 달그락의 청소년 자치 활동에 초집중했다.

 

그리고 7년 전 오늘 우리 막내딸이 준 편지에 감동했는데, 그날 일요일이었는지 아이들과 은파에서 산책하면서 대화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5년 전 오늘, 지금의 달그락공감위원회(전 청소년위원회)의 김규영 위원장님과 최현종 원장님이 신입 위원으로 입회한 날이다.

 

3년 전 오늘 청글넷 새벽 글모임 4일째 되던 날로 정말 많은 분이 참여했었던 추억이 있는 날이었는데, 당일 내 다섯 번째 책을 출간해서 판매할 때로 하태호 팀장님이 경기도에서 오셔서 사인까지 받아 간 날이다. 그리고 1년 전 오늘은 제자이자 후배인 조은빛 선생이 결혼하면서 군산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내 머리로는 이전에 오늘이라고 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소중한 추억을 페북이가 알려 주고 있다. 벌써 15년 가까이 끄적여온 일상의 삶이 녹아 있는 곳이다.

 

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삶이 그다지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현장의 삶에 집중하고 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고 관계하려고 한다. 그 안에서 10년을 하루같이 만난 분들도 계시고, 어느 순간 지역을 떠나서 안부만 묻는 분들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막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내 옆에서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질문했던 아이였는데, 청소년기가 되면서 말이 많이 없어졌으며, 요즘은 나보다 일본 만화와 영화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학 동안에는 그래도 가끔이라도 대화하고 장난도 쳤는데 새 학기 첫날이라 그런지 많이 피곤해 보인다.

 

삶은 간다.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일상을 나름의 의미를 붙들고 살아내면서 간다. 먼 미래에 어떤 엄청난 변화가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 순간의 작은 점들이 지금의 또 다른 점을 찍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만 같다.

 

막내가 나에게 삶의 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이전에 준 것이 확실하다. 그 안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힘 또한 비슷해 보인다.

 

오늘도 또 하나의 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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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