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의 나에게 미루지 마라. 그 새끼도 정말 하기 싫어한다"는 글 읽다가 혼자서 터졌다. 종이에 쓰여진 글이 SNS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성경구절이 있다. 내일 일에 대한 걱정을 내일 하라는 말이라고 여기는 이가 있다. 아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므로, 우리는 내일이 되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내일 일을 위하여 지금도 내일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된다.
어떻게 하면 걱정이 없을까?
오전에 출근하면 행정업무 집중하고, 점심 먹고 오후에는 지역에 연대활동하느라 지역의 기관단체나 후원자분들을 만났고, 저녁이 되면 학교 마치고 기관에 찾아오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밤이 되면 위원회 등 내부 조직된 어른들 회의를 안내했다. 그러다가 늦은 시간 퇴근하면 현장의 고민들을 쓰기도 했고 밀린 공부 했다. 토론회나 세미나, 강의 등 발표 원고는 거의 늦은 밤에 작업했고, 학회 논문도 그때 집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잠을 줄이면서 일을 하는데도 나는 매번 일을 다음 날로 미룬다고 여겼고, 그 안에서 조급증을 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면서 후배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구소와 달그락이 10년이 지났다. 그 안에 하루 활동 패턴도 바뀌기 시작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계획한 대로 일정을 마쳐야 조금이라도 안정이 된다. 혼자 일할 때야 내 마음대로 하면 되지만 조직이 커지고 후배도 많아지게 되면 오늘 계획된 일을 끝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직원들이 업무를 계획대로 하지 않을 때 걱정은 계속되고 갑자기 ‘욱’하기도 하고 고민은 증폭되어 쌓여 갈 때가 있다.
일요일이다. 오전 늦잠 잤다. 교회 다녀오고 사무실 나가서 업무보다 보니 어느 순간 선생님들이 모두 출근해서 각자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업무에 여념이 없다. 원래 일요일은 당직 선생님만 나오는데 최근 이런 일이 반복이다. 선생님들도 업무가 많은 모양이다.
11월 초부터 중요한 행사가 몇 개 있다. 청소년과 지역사회에 복이 되는 일이라고 믿고 하는데, 최근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선생님 중 늦어지고 놓치는 일이 내 눈에 너무 많이 보여서 피곤할 때가 있다.
지난주 선생님들과 야근하며 저녁식사 했다. 서로가 농담하며 장난도 걸고 화기애매(?)한 분위기였다. 요즘 자꾸 일정 늦어지는 후배에게 “샘, 열심히 하는 거죠?”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그럼요. 소장님,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이만큼 열심히 하기도 어려운 걸요. 역량은 좀.. 그렇지만”라면 웃는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그럼 됐죠, 뭐.”
당사자가 열심히 했다면, 성경 구절처럼 내일이 되어도 그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 바탕에 후배들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가 깔려 있다. 지금 이 순간의 내 강박과 조급증도 낮아진다. 어쩌겠나? 최선을 다한다는데.
나에게도 대입해 봤더니, 지금 일도 내일 일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것은 계획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미루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미래의 그 ‘새끼(?)’에게도 미루는게 아니라고 안내하면서 웃어 줘야 옳다.
꾸준히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자신이 안다면 그만큼 하면 된다. 나처럼 자학하면서 반드시 오늘 마쳐야 한다는 미친 강박을 내려 놓아야 자신도 편안해 지고 주변 타자들도 평안해 진다.
일요일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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