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준의 아는 언니가 유학 왔다가 짧은 서울 생활을 마치고 미얀마로 돌아간다고 했다. 몇 달 동안의 서울에서의 생활에 지친 듯했다. 내전이 있는 나라보다도 서울에서의 유학생활이 더 어렵지는 않았는지.
한국의 출산율이 전 세계 0.78명이다. 비슷한 나라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있다. 전쟁이 없는 전쟁 같은 삶을 사는 나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자살률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그제 대구에서 대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앞에서 혐오 발언을 내뱉으며 극우 시위하는 젊은이들의 영상이 돌았다. 일본의 혐한 세력을 보는 것 같아서 끔찍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이 소수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까?
우리나라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2% 내외가 된다는 설이 있다. 불과 7개월 전 이런 자들이 독립기념관 관장이 되고 이사가 되었다. 많은 관직에 이런 자들이 앉았었다. 3.1절에 일장기를 다는 정신 나간 이들까지 출몰했었다. 소수의 극우들의 생각을 가지면 권력도 나눌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자들이 최상위에 있었다.
잘 사는 나라? 좋은 나라는 어디일까?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를 거쳐 70여 년이 지나면서 우리가 살아내는 이 땅은 어떤가? 과거의 그 아픈 현대사를 거쳐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라. 심지어 최근에 보수라고 일컫는(한 명은 극우에 가까운) 두 명의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내리면서까지 우리가 붙잡아 온 민주주의의 바탕에서 우리가 가지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7시 넘어 이한샘과 메이준 함께 대화했다. 두 달여 인턴 활동 가운데 자기 ‘성과’에 대한 대화 중 오늘 질문할 게 있다고. ‘삶의 바다로 모험을 떠날 용기’, 책 읽다가 힘겨움 겪는 청소년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지원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메이준은 꿈이 있었다. 그래, 바로 그 꿈. 꿈이 중요했다.
사회적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일제강점기, 전쟁 후 폐허가 된 이 땅에서 공부하며(또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학교를 짓고,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이들의 삶을 보면 모두가 그들이 원하는 ‘꿈’이 있었다. 개인적 영달이 아닌 사회적 꿈이었고, 그 안에서 희망을 노래했다. 내 보기로 멀리 있는 그 어떤 이상 사회가 아니었다. 전쟁으로 나라 경제는 파탄난 광야보다 못한 그 공간에 꽃을 키우며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 그 순간이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어찌 됐든 우리 세상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그 헌신으로 이렇게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만, 무언가 아쉬운 현대의 우리 사회를 보면서 나와 같은 세대의 부족함이 자꾸만 커진다.
정말 어렵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유학을 온 후 짧은 시간을 보내면서 지쳐서 다시 계엄에 내란, 쿠데타가 있는 모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알지 못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사랑하는 이 땅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 청소년, 청년들의 현재의 꿈은 무엇이어야 하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이 순간, 이 공간, 이 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이렇게 아파하는지? 그냥 생각이 많아진다.
메이준 인턴 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갖고 와야 할), 다음 너머(?)의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도 따뜻한 순간 대화 중 힘겨워 하는 청소년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는 답. 그 어떤 세상일지라도 사람에 대한 ‘애정’만큼은 절대로 내려 놓지 말아야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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