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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by 달그락달그락 2025. 7. 17.

 

청소년자치연구소에 인턴 선생님 네 분이 오셨다. 모두 대학 졸업반. 경영학, 철학, 스페인어, 사회복지 등 전공도 다양하다. 졸업을 앞두고 인생 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은 청년들이다. 한 달 동안 청소년들과 짧은 멘토링도 하고, 달그락의 팀별 활동에 참여하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도 나눌 예정이다.

 

어제와 오늘 일 마친 뒤 인턴들과 깊게 대화했다. 오늘은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곳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내가 자주 꺼내는 질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 언제일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일까?”

 

답은 정해져 있다. 톨스토이 할아버지 말씀하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 간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는지가 참으로 중요해.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죽음은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다.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죽음 무관주의를 잘 나타낸 대표적 구절로 알려져 있다.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Epicurus)는 진정한 쾌락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때 온다고 본 것 같다.

 

그 유명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는 뜻이다. 정확하게는 현재의 날을 붙잡아라는 말이다. 오늘을 살라는 것.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가 쓴 시 <송가(Odes)> 중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오늘을 붙잡고 내일은 최대한 믿지 말라는 구절 중에서 똑 따와서 인용된 구절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키딩 샘이 전한 이야기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영화 보면서 알았다.

 

세네카(Seneca)"죽음은 우리가 앞날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 옆에 있다."고 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Meditations)>에서 "네가 사는 이 순간이 곧 죽음과 맞닿아 있다."고도 했다. 우리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인식을 통해 현재를 진지하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이다.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수많은 이들이 너 곧 죽으니(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죽도록 일하면 잘 사는 걸까?

물건을 나르고, 결제하고, 운전하고, 포장을 하고, 마케팅 기획을 하고, 수술을 하고, 청소를 하며, 강단에서 강의하는 사람들은 살고 있는 걸까?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떤가?

오직 나만을 위해서만 살아 간다면?

산에 들어가 인간관계 신경 쓰지 않고 자연과 벗 삼으면 어떤가?

종교 붙잡고 세상과 분리된 채 천국만 그리는 삶은 어떤가?

 

오래전 청년의 때에 백수클럽이라는 커뮤니티 회원에 가입했다. 그때 정말 죽도록 일할 때였다. 잠도 줄여 가면서 활동 할 때였는데 다음 카페에 이 클럽이 눈에 띄어서 가입했고 회원들 활동을 유심히 보았다. 돈 버는 일은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빈대 붙어(이들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고)서 하루를 호의호식하는 수많은 방법이 나와 있었다.

 

무료로 영화, 전시회부터 좋은 곳에서 식사하는 방법 등 많은 노하우가 있었다. 대표는 결혼한 누나 집에서 얹혀 살고 있었는데 행복하다고 했다. 어떤 이는 돈이 넘치는 사람인데도 젊은 나이에 자살하기도 한다. 백수는 행복한 걸까? 그렇지 않다. 백수 되어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청소년, 청년 만나면서 내 안에 가장 큰 화두는 사는 일이다. 하루를 잘 사는 것. 다만 그 답은 없다. 이 사회에서 윤리, 정의를 지키면서 이 순간을 잘 살아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안에 시민성과 공동체, 참여와 자치, 민주주의 등 몇 가지 가치는 깨닫게 되었다. 삶의 바탕이 됐다.

 

그런 본질적인 바탕 위에서 내 안의 내가 정말 사는 게 무엇인지는 계속해서 의문이다. 금욕적 삶, 쾌락주의그 어딘가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내가 거의 금욕적인 종교인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는데 그렇지 않다. 마음은 언제나 혼란스럽다.

 

인턴 막 시작하는 20대의 청년들, 곧 사회생활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정말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매뉴얼과 같은 방법은 없다는게 결론이다.

 

나도 이 나이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잘 사는 방법 찾고 있다고 했다. 나름의 비전()과 뜻을 붙잡고 살아내는 게 활동이라고도 했다. 아직도 계속해서 나름의 인간다운 삶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정답은 우리 삶에서 답이 없다는 것.

 

이 글 읽은 친구들은 살고 계시나요? 어떻게 사는 게 사는 걸까요? 청년들에게 한마디 해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