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들이 3루타를 친 줄 압니다.”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의 대사다. 자신이 한 일인지, 남 때문에 도움받은 일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 나흘째 농성... 국힘 야성 되찾나?” 신문기사 제목이다. 기사 읽다가 품을 뻔했다.
야당의 중진 의원께서 하는 농성을 “웰빙 김밥 먹고, 스타벅스 커피 마시고, 덥다고 탁상용 선풍기 틀고”라며 “캠핑 같기도 하고, 바캉스 같기도 하다”는 분이 있었다. 냉방되는 공간에서 캠핑하듯 지내는데, 언론사 제목이 ‘야성’을 되찾나였다.
아마도 나 의원께서는 자신이 정말 야성을 되찾아 치열하게 농성하는 줄 아실 수도 있다.
최근 강의하는 대학에서 성적이 너무 높게 나왔다면서 메시지를 보낸 학생이 있었다. 시험을 잘 못 봤는데 생각보다 높은 점수였다고 했다. 전체 성적에서 시험 점수보다 꾸준히 제출하는 과제 점수를 높게 책정하는데, 이 친구는 몰랐던 모양이다.
나 포함해서 어떤 시험이든 대부분 자신의 시험 점수가 높지 않다고 여기는데, 이 청년은 달랐다.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되는 학생이다.
사람은 자신의 위치와 본분을 자세히 알고자 할 때 성숙해진다. 그렇지 않고 자기 중심의 논리와 편협한 이기성만을 강조할 때 영유아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기 때 보면 답 나온다.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자고 싸기만 해도 칭찬받는다. 하지만 나이 먹고 그러면 안 된다.
미친놈 소리 듣거나 시설에 수용될 수도 있다.
나이 먹고 조직에서 위치가 올라갈수록 각자의 미성숙한 부분을 보듬고 안아줄 수 있는 공간을 내어 주는 사람이 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어야 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조직 생활에서 자기 수용의 공간을 더 크게 만들어야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
나이 먹고 선배 소리 들을수록 그 수용의 공간이 커지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3루에 태어났으면서 자신이 3루타 친 줄 아는 사람들을 갈수록 많이 만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나이 먹고 위치가 올라갔을지라도 자신이 안타를 친 것인지, 포볼인지, 홈런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
홈런을 치고도 “내가 친 게 아닌 너희들과 같이 쳤고, 너희들이 대부분 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직 활동은 실제로도 그렇다. 문제는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신이 3루타 친 줄 아는 짓이다. 모두를 배척하고 왕노릇할 때, 폭군이 되거나 왕따가 되거나 쫓겨나거나 셋 중에 하나가 될 거다.
나이 먹으면서 부족함만 보인다. 수용하는 용량을 더 키워야 할 터. 3루타는 고사하고 데드볼 맞아서 꾸역꾸역 나가서 어떻게든 홈을 밟아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면서, 주변을 나무라는 짓은 해서는 안 된다. 선수인지 코치인지도 구분을 잘해야 옳다.
하루가 갔다. 빨리도 갔다. 3루타 치려고 배트를 크게 휘둘렀는데 삑사리(?) 나면서 공이 졸졸 흐르다가 겨우 1루에서 슬라이딩해서 간신히 살아난 하루다. 그나마 살아서 다행이다.
할 일은 넘치나 사람 간에 ‘정’이 없으면 나는 힘겹다. 이름이 정(?)씨여서 그런가? 아무튼 정씨여서 다행이다. 김씨였으면... 큰일 날 뻔. 그런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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