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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뇌썩음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화물숭배는 막아야

by 달그락달그락 2025. 1. 2.

 

뇌가 썩었니?” 싸울 때나 상대를 비난할 때 쓰는 용어로 알고 있었다. ‘뇌 썩음’(brain rot)을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품질이 낮은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할 때 사용되는 용어로 새롭게 주목받았고, 사용 빈도가 2년여간 230% 증가했다는 게 선정의 이유다. 릴스, 쇼츠,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 넘쳐나는 품질 낮은 짧은 길이의 동영상을 과도하게 소비하면서 나타나는 문제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신념 체계 안에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보려고 한다. 알고리즘에 뜨는 유튜브의 동영상이 그 신념을 더욱 강화 시켰다. 확증편향이 증폭됐다.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확고하게 갖고 있는 이들을 보면 어떨 때는 두려울 지경이다. 목숨을 걸기도 하고,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기능을 하며, 우리 사회에 어떠한 득과 해를 끼치는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으로 뜨는 극우 유튜버의 말이 자신의 뇌를 썩게 한다는 것을 모른 채 좀비처럼 따라가는 형국이다. 극우라고 표현하는 폭력적인 사람들만 그럴까?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나 또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미군의 비행장이 만들어져 비행기가 자주 이·착륙하였다.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화물이라는 문구가 적힌 포장 상자로 가득한, 하늘을 나는 큰 새를 보고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화물이라고 적힌 비행기에서 내린 물건들은 그동안 그들이 보지 못한 신기하고 유용한 물건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은 비행기와 함께 떠났다. 서구에 좋은 물건과 맛있는 음식 맛을 알게 된 원주민들은 비행기가 다시 오길 바라면서 활주로와 비슷한 것을 만들기 시작한다. 땅을 고르고 양쪽에 유도 등을 대신해 불을 피운다. 관제탑을 대신한 오두막도 짓고, 관제사들이 헤드폰을 한 것을 기억하고 머리에 나뭇조각 두 개를 꽂았다. 그 옆에 대나무로 안테나도 준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았던 비행장을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여기고 비행기를 기다린다. 이를 본 인류학자들은 이와 같은 의식을 화물숭배라고 불렀다. 선후 관계를 인과 관계로 착각하는 경우를 주로 이른다. 남태평양 원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공항에 비행기는 절대로 내릴 수 없다.

 

최근 언론에서 음모론에 뇌썩음의 대표적인 예로 윤 대통령의 극우적 사고를 드는 전문가들이 많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신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과 시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관저 앞에 집결했다. 이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대통령의 선동 편지에 열광한다. 대통령 체포를 막기 위해서 모여 있는 이들이 만들고 있는 활주로는 무엇일까?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라는 이유를 들어 계엄령을 발동했다. 야당을 증거도 없이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도대체 대통령과 이들이 기다리는 화물은 무엇일까? 10% 내외의 극우적 사고를 하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시민을 척결하는 공항(세상)을 꿈꾸는 것일까?

 

나이 먹을수록 자기가 가진 신념을 내재화하고 반복하기 마련이다. 거기에 알고리즘 타고 들어가는 유튜브의 극단적 영상을 매일 보게 될 때 신념은 증폭되어 터질 지경이 된다. 그곳에서 만들어 내는 이상한 활주로의 문제는 원주민들이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미 존재하는 진짜 비행기를 공격하고 공항에 폭탄을 던지면서 관제탑 대신 귀에 나뭇가지 꽂으면서 새로운 공항이라고 우기는 일이 자연스러워진다.

 

2025년이 되었다고 모든 일이 새롭게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이어져서 진행된다. 썩어가는 뇌를 만들어 내는 동영상의 알고리즘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돈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기업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새해에도 우리가 지켜야 하는 진짜 공항과 비행기가 있다. 우리에게 진보, 보수가 있을까? 그저 내가 믿는 신념이 있고 그 안에서 적이 있을 뿐이다. 그 어떤 신념을 가졌어도 법을 지키지 않고, 상대를 해하고 혐오하며 폭력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이들은 멀리 해야 한다. 공부해야 산다. 다양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기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내 뇌가 썩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어려운 제도이고 철학이며 가치다. 우리의 일상을 그나마도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도록 돕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다. 뇌가 썩지 않고 화물숭배를 넘어 공항과 비행기를 파괴하지 않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