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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길위의청년학교

삶의 모든 터무니 없는 이 은총, 길위의청년학교 7기 제주 수학(배움)여행

by 달그락달그락 202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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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청년학교(이하 길청) 배움(수학?)여행 중이다. 오늘이 세 번째 날 늦은 밤. 

 

첫날 오후 일정 마치고 저녁부터 시작된 ‘비전 워크숍’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내 삶에 우선순위 찾고 실천 방법까지 찾아 보고 대화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청소년활동, 그 어딘가에 모두 집중되어 있는 청년들의 속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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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오전 강정마을에 갔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전히 평화를 위해서 저항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번 주 강정은 국제 평화운동가 캠프 중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도 반전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모였다. 활동가들이 매일 진행하는 인간 띠 잇기 등에 길청 청년들과 참여했다. 발언을 부탁해서 7기 학생회장인 이 선생님이 길청 소개와 평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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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뮤지엄과 액티비티 활동 나누어 진행. 나는 몇몇 청년들과 포도 뮤지엄에 갔다. 시간과 기억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기억이 사라져도 존재는 그 어딘가 남는다. 삶은 어찌 됐든 그 기억의 파편이 모여 완성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일정 마친 후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이강휴 이사장님 오셔서 청년들에게 식사 대접하고 함께 표선해수욕장 산책했다. 청년들 응원해 주며 짧게 삶을 나누어 주셨다. 고마운 마음이 크다. 삶을 나누는 방법을 아는 분이 옆에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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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후 이틀째 이어진 워크숍.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마쳤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시간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은 가치에 대한 질문에 “공존, 평화, 평생 약자와 소수자들과 함께 산다는 것, 청소년과 함께 꿈꾸는 사회를 만들기, 차별받지 않는 사회, 학교 밖 청소년이 차별받지 않고 일반 청소년과 같이 존중받는 지역 등”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청소년, 특히 방황하는 청소년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주겠다는 청년이 있었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고 헌신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부분 청소년과 자기 현장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삶에 마지막을 마무리하면서 나누고자 하는 일들도 나누었다. 남편에게 따뜻한 밥 한끼 해 주고 싶다는 친구가 있었고, 키우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일상을 살겠다는 청년도 있었다. 


청년들과 늦은 시간까지 대화하고 현장 활동에 대한 삶을 나누면서 두 가지를 알게 됐다. ‘일’과 ‘사랑’이 우리 삶의 모두였다. 개인의 비전과 조직(회사)의 비전에 교집합이 클수록 행복하다고 했다. 교집합에는 건강과 사랑도 연결되어 있고, 내 삶의 비전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도 있다. 본질은 내가 존재하는 공간에 사람들이고 그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내 현장의 일이다. 나누고 분절시키기보다는 될 수 있으면 연결해서 확대하는 게 좋아 보인다.


나는 꿈꾼다. 내가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면서 가슴이 충만해지고 또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살면서 뿌듯해하며 가슴이 충만해지는 사회적 관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위해서 산다. 택시 기사는 승객을 위해서, 의사는 환자를 위해서, 교사는 학생을 위하고, 상담사나 청지사, 복지사는 클라이언트라고 표현하는 당사자를 위해서 산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노트북을 만든 엔지니어와 개발자들 또한 나 같은 사용자를 위해 일한다. 


상대를 수단시하고 파괴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 우리 사회 모두가 여기 청년들처럼 당사자인 청소년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본질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러한 사람들의 관계가 폭넓게 이루어져 확산 될수록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공간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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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아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강정마을과 같은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기나긴 저항이 있어도 폭력적인 환경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고 혼란스럽지만 한 가지는 안다. 그럼에도 4.3평화공원에 마지막은 용서였고, 강정의 극소수 활동가들은 여전히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삶을 살아 낸다. 현장 활동과 함께 세계평화대학을 열었고, 갈등의 바다로 불리는 동지나해를 가로지르며 공존과 평화의 바다를 만들자는 항해를 하고 있다. 


누구는 돈키호테와 같은 짓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 안의 숭고한 본질적 가치를 살아 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덜 미친 나라, 덜 미친 지구촌의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안다. 


청년들과 마지막을 나누면서 딱 두 가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그 어떤 가치나 비전을 내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과 하늘 둥둥 떠다니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자가 되자고 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모여서 공부하고 경험하는 공간은 ‘길위의청년학교’다. 현장에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비전을 세우고 이사장님과 같은 시민들과 함께 매해 기적처럼 운영되면서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그 안에 우리가 꿈꾸는 가치와 이상은 역동이 되어 현장에서 밀알처럼 흩뿌려지고 있음을 안다. 계속해서 확인하고 그들 안에서의 실천적 삶이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바탕이 되어 간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고 여기지 않는다. 살다 보니 이 ‘길’ 위에서 뚜벅뚜벅 살아 내는 게 옳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렇다. 청년은 이상이고 역동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이상을 붙잡고 뭐라도 하는 사람이 나에게는 청년이다. 현실성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상과 가치, 나름의 비전이 있고 현장에서 어떻게든 실현하고 있다는 것, 그거면 됐다. 그러다가 이 땅 떠나는 게 청년의 삶이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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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육신의 껍데기를 벗고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사라져 티끌로 돌아갈 것이다. 원래부터 우리는 잠시 스치는 존재, 우리를 초월하는 전체의 한 파편이었다. 그동안 잘 버텨왔고 아직도 세상에 호의를 느낄 수 있음을 기뻐하자. 행복한 인생이었든 고통스러운 인생이었든,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 앉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의 크기가 가늠된다. 우리는 상처 받았지만 충만함을 얻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가 참 많다. 그러나 우리가 올리지 않았던 기도가 백배로 성취되기도 했다. 우리는 악몽을 관통했고 보물을 받았다. 삶은 참 잔인하거나 지독할 수도 있고 풍성할 수도 있었다. 당연히 받았어야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어제 갔었던 포도뮤지엄에 벽에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직 않은 날들을 위하여’라고 쓰여 있었던 글이다.
3박 4일의 마지막 밤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경험하고 성찰한 것을 정리 중이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삶의 과정을 돌아보니 모두가 은총이다. 삶의 모든 터무니 없는 은총에 그저 감사함만 넘치는 밤이다.

 

이강휴 이사장님, 내 사랑하는 동지. 제주에 와서 청년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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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9일부터 9월2일 까지 길위의청년학교 7기 제주로 수학(배움)여행 떠났을 때의 기록을 페이스북에서 퍼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