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모두 개학했다. 고3처럼 사는 중3 아이. 시험 문제 한두 개만 틀려도 세상 망할 것처럼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청소년인데 이번 방학은 체험활동으로 꽉 채웠다. 그것도 모두 자신이 신청한 활동이어서 좋았다.
일주일은 지역 대학에서 진행하는 진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학교에서 연세대 학생들이 지원하는 활동에 신청했는데 합격해서 일주일을 보냈고, 달그락에서는 기자단 활동하면서 평화를 주제로 한 상상캠프로 3일간 서울과 철원에 다녀왔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교제하게 된 남자친구와는 이별을 고했다고.
인생 한량으로 사는 중2 막내는 학교를 좋아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방송반과 보컬, 학생회 등 여러 자치활동에 빠져 있다. 공부는 시험 때 잠깐 하는 것 같다. 시험 기간에만 시립 도서관이라고 늦은 시간 태워 오라고 전화 오는 내 귀요미.
막내는 방학 기간도 한량이었다. 친구들하고 수영장 가서 놀고, 집에서 뒹굴뒹굴 책보다가 침대에서 자는 시간이 길었다. 언니하고 일주일여 대학생 멘토링 활동 참여한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학교 동아리 활동에 모임이 있으면 꼭 참여했다. 그렇게 두 아이의 짧은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공부는 건강하고 잘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자기주도성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학원에 의존하게 하거나 과외 붙여 선행학습 시간이 길수록 오히려 자기 주도성을 키우는 데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
청소년에게 공부는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몰입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학문제 하나 해결하기 위해 끙끙거리면서 새벽 한두 시까지 풀 힘이 있으면 좋다. 이렇게 공부한 아이가 좋은 대학 입학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기 주도성 커지면서 삶의 자치 수준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거면 성공이다.
학벌과 능력은 같지 않기에 삶의 자치성을 키우는 게 (내 경험상) 더 중요해 보인다. 특히 청소년기에 자기 공간의 참여수준 높여야 옳다.
자기주도성 높이고, 자신이 서 있는 공간에 참여수준 높이는 일은 앉아서 문제집 풀고 책 읽는 것에만 있지 않다. 경험이 공부다. 아주 큰 공부다. 체험하면서 나타나는 성찰적 학습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비형식교육의 근간이다.
아이 미래가 불안한 부모들이 자꾸만 학원에 앉혀 놓으면서 안심하는데 가장 큰 위험은 거기에 도사리고 있다. 학원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아이의 필요에 의해서 도움받는 정도면 좋다만 그렇지 않고 습관적으로 선행 학습이나 반복적으로 문제 대신 풀어주는 것에 길들여 지면 자기 주도성은 오히려 깎여 나가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청소년들 보면서 경험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육학자의 반복되는 이야기다.
공부는 무엇이고, 왜 시켜야 하나?
답은 정해져 있다. 아이가 독립해서 사회에 기여하며 건강한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만약 내 아이가 중학생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5, 6년이면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에 나가게 된다. 그 5, 6년 동안 과연 우리 아이들을 사회에 독립적인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아니면 부모나 학원강사 없으면 그 무엇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쓰다 보니 내 자식은 잘 키우는 것으로 비추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저 그 아이들이 선택해서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오랜 시간 청소년 현장에서 경험했고, 나름대로 공부한 내용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들이 앉아서 문제 풀고 책 읽는 것뿐만 아니라 믿을만한 청소년활동 기관에서 다양한 자치활동 할 수 있도록 권면하면 좋다.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 정도라도 신뢰할 만한 청소년기관에서 활동 특히 자치활동에 참여하게 될 때 아이들의 자기 주도성이 매우 커진다. 이미 경험과 사례가 너무 많다. 내 아이들도 그렇게 안내하는 이유다. 그 선택은 또 아이들이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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