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사는 이야기

인생은 마라톤처럼 뛰어야 한다는 거짓말

by 달그락달그락 2024. 8. 14.

 

 

인생은 단거리 육상 경기가 아니라면서 마라톤처럼 살아야(뛰어야) 한다는 말을 믿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속았다는 걸 알았다. 마라토너처럼 뛰다가는 잘 못하면 죽는다.

 

마라톤 세계기록은 작년 킵툼이 세운 2시간 35. 마라토너들은 100미터를 거의 17초 내외에 뛴다는 계산이 나온다. 마라톤을 뛰려면 나 같은 일반 사람들이 100미터 뛰듯이 죽도록 42킬로미터가 넘는 엄청난 거리를 뛰어야 한다. 나 같은 일반인들은 마라토너처럼 인생 살면 힘들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사는 게 이 모양이 되었을 수도.

 

10년도 훨씬 전에 ‘GQ코리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 질문 중에 오른 인세 덕분에 부자가 됐나요?”라고 하니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난 돈에 욕심이 없어요.”라며 이유 없이 비싼 건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아요.”라고 답한다.

 

그러자 기자가 그럼 대체 그 많은 돈으로는 무얼 하시나요?”라고 물어. 그러자 하루키는 지금까지도 SNS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자유. 자유를 사고, 내 시간을 사요. 그게 가장 비싼 거죠. 인세 덕에 돈을 벌 필요는 없게 됐으니 자유를 얻게 됐고, 그래서 글 쓰는 것만 할 수 있게 됐죠. 내겐 자유가 가장 중요해요.”

 

돈으로 자유를 샀다는 거다. 부자 되기 전에는 늦은 시간까지 아내와 힘들게 일을 했다. 그래서 글 쓸 시간도 부족했고 달리기도 못했다는 것. 자유가 없었는데 엄청난 인세를 받게 되자 딱 하나 자유가 생겼고 이를 최대치로 사용하고 있었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를 한다. 술자리나 사람들 관계하는 일은 모두 끊어 낼 힘이 생겼다.

 

삶은 마라톤이나 단거리 육상 경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생도 많다. 어떤 결승점을 위해서 죽어라 경쟁하면서 가는 일도 아니다. 골인 지점을 향해 갈 수도 있고 나 자신만의 목적지를 위해 다른 곳으로 달릴 수도 있다. 버스를 탈 수도 있고, 걸어갈 수도 있다. 산책은 어떤가? 또 등반은? 모두가 자유다.

 

삶은 자치하는 일이다. 나 자신을 내가 다스리며 얻는 자유를 얻는 일이고 그 안에서 꿈꾸는 그 무엇을 행하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 자유롭게 삶을 누리면서 꿈꾸고 이상이라고 여기는 그 무엇을 꾸준히 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마라토너처럼 골인 지점을 향해 갈 수도 있다. 자치적인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못하랴.

 

더위를 먹었는지 이 주 정도 상태가 메롱(?)이었다.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가 컸다. 내가 나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상황에 무슨 자치를 이야기하는지 내 안에 나에게까지 짜증을 냈다. 하고 싶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 활동은 손을 못 대고 있고, 기관 운영이나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일들이 치고 올라와서 시간을 모두 갉아먹어 버리면서 더 조급해졌고, 내 부족함만 커 보였다.

 

더위 먹어 정선배(사무실 선생님 중 별명이 정 선배인 분)에게 나 더위 먹은 것 같다고 했더니 바로 소장님 언능 뱉으세요란다. 그러게 말이다. 이 말 듣고 알았다.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가 있을까? 그나마 내 수준에서 선택한 일에 집중하면서 산다고 여기고 있다. 일이 많지만, 최소한 다른 직종에 비해 그 어떤 선택권은 매우 커 보인다. 선택권이 크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 일만 한다. 그 안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있을 뿐이다. 시간의 문제이지 순차적으로 잘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자치, 곧 자율성을 생각해 보니 이를 얻어서 행하고자 하는 그 어떤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 자율성만이 목적이 아니다. 마라톤에 속았다는 것은 달리기가 중요한 게 아닌 삶 그 자체가 이유여야 했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꼴, 못 볼 꼴 충분히 봤다. 한번 본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겹, 두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노년의 박완서 선생님이 쓴 글이다. 삶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 충만해지며 가볍고 또 가벼운 존재 자체로의 삶이다. 조금 더 가볍고 가볍게 살아야겠다. 가볍게. 글이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라는 박 선생님 말씀이 답이다.

 

일도 책도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돼도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해 보는 과정이겠다. 눈이 부실 때까지 해(?) 봐야지.

 

더위야 나와라. 퉤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