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예약된 병원에 가서 잠시 진료받았다. 지역에서 큰 병원 중 한 곳이다. 사람이 많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갑자기 ‘나도 죽지’라는 생각을 했다. 몇 년 동안 죽음에 대해서 꽤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반드시 죽는다. 이 글 읽는 사람들도 거의 100년 안에 죽는다. 예언이 아닌, 그냥 사실이다. 누구나 죽지만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영생할 것처럼 살고 있는 내 모습이 가끔 싫을 때가 있다. 그래서 옳고 그른 것도 중요하지만 삶에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돈 버는 일, 세상을 바꾸는 일, 많은 이성과 연애하는 것, 승진하는 것, 권력을 잡는 일, 책과 논문 쓰는 일. 잘 모르겠다.
통계는 정확히 알려 준다. 몇 년 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서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했다. 조사 대상 17개 나라 대부분 ‘가족과 아이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삶에 의미 있는 요소로 ‘가족’ 다음으로 ‘직업적 성취’가 높게 나타났고 그다음이 물질적 풍요를 꼽았으나 ‘물질적 풍요’가 1위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친구나 공동체적 유대의 중요성도 높게 나타났으나 한국은 3%만 그렇다고 응답했다고. 유럽 등 서구 나라가 우월한 나라라고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중요한 것은 돈이 가족이나 아이들, 친구들과 평생 하는 직업적 가치보다 더 중요하냐는 문제다. 사랑하는 이들이나 직업적 성취보다도 무조건 돈이면 되냐는 말이다. 하루 종일 살아가는 그 삶의 본질이 돈인가?
오랜만에 쉬는 월요일이다. 예약된 병원에서 별 병도 아닌 검사를 받았고, 또 건강 검진 예약을 하고 나와서 갑자기 공부하겠다면서 요즘 도서관 다니는 막내를 하굣길에 태워서 시립 도서관에 태워 줬다. 산책을 잠시 했고 헬스클럽에 들렀다. 저녁에는 청글넷 월간 책 모임을 했다. 10시가 되어 다시 막내를 도서관에서 태워 왔고 귀가한 후 설거지했다. 내일 일정 살피다가 시간 보니 지금이다.
오늘 청글넷 월간 책 모임에서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를 중심으로 대화했다. ‘찰나를 살기’, ‘보편성에서 벗어나고, 나다운 나가 편안해할 수 있는 태도를 찾기’ 등 생각이 많았다. 항상 why에 집중해 있었고, why가 정리가 되면 what으로 움직여 가다 보면 how는 자연스럽다고 여겼는데. 우리네 삶은 그렇게 순서대로 되지 않음을 알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how가 어쩌면 우리네 삶 why의 우선순위를 결정해 나가는 과정인 경우도 많아 보인다.
오늘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막내 아이의 하굣길에서 만나서 도서관 태워 주면서 편의점에서 간식 사주고 대화 한 일이다. 책 모임도 좋았다. 모임 마친 후에 시립도서관 가서 막내와 친구 태워 귀가시켜 주면서 아이들과 대화 한 일. 내가 오늘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한 일이 아니었는데 돌아보니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일은 막내를 태워 가고 온 일이었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일은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랑도 우선순위가 있을까? 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를 잘 지켜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기 마련이다.
자기 자식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청소년을 위해서 교육 운동 한다면서 설레발치는 교사의 활동은 거짓일 확률이 높다. 사회의 약자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운동하면서 정작 가족을 내팽개치는 이들 또한 거짓일 확률이 높다. 나 또한 거짓 인생 살 뻔했다.
어떠한 일이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는 일이 최우선이다. 가족과 직장 동료, 이웃, 벗, 지인, 선후배 등 수많은 사람과 진짜 관계하면서 살아가는 일이다. 죽음이 올 때까지 우선해야 할 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 내는 일은 바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 관계의 폭이 넓어질수록 죽음도 기꺼이 편안한 동반자가 되지는 않는지.
'연구 및 관점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벌세탁? 학벌을 계급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야. (56) | 2024.07.23 |
---|---|
[새전북] 아줌마라는 이유로 출입금지되는 곳이 있는 사회 (50) | 2024.07.02 |
아줌마 출입금지, 갈라치기는 사회악을 키우는 일 중 하나 (41) | 2024.06.17 |
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일어나는 일_새전북칼럼 (40) | 2024.06.02 |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는 방법 _ 미래신문 칼럼 (48) | 2024.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