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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강의 및 연구

현장 활동가의 강의 잘 하는 방법

by 달그락달그락 2024. 4. 12.

내가 어설픈 꼰대가 되고 있나?

 

나의 신념이나 주장을 누군가가 알아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도 9시에 시작한 연구회를 이(?) 시간에 마쳤다. 강의하는 시간을 조금씩 더 연장하면서까지 현장에서 청소년활동 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이들의 눈을 보면 이런 마음이 계속 더 커진다.

 

요즘도 매주 2회 이상 고정된 강의가 있고 그 안에서 후배들이나 수강생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 있다. 이에 더해 가끔 외부 특강도 있고 연수도 있으니 현장 활동가 치고 강의가 꽤 많은 셈이다. 그렇다고 오라는데 모두 가지는 않는다. 현장 활동이 바쁘기도 하지만 나름의 기준이 있어서다.

 

내 관점으로 쓴 책에 관해서 설명하기도 하고, 연구 결과, 경험에서 나온 어떤 신념이나 이상, 철학, 현상에 대한 해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대부분 청소년과 사회, 교육, 정치사회, 기관(조직)운영과 등과 연관된 이야기다.

 

오후에 월간 실무회의했다. 한 달여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선생님들과 나누는 자리다. 언젠가부터 월간 회의는 선생님들 활동에 대한 피드백 시간이 되어 버렸다. 장단점이 있다만 그 이상을 바라지 않게 됐다. 회의하다가 사업에 관해 설명하면서 화이트보드 가지고 보드마커 꺼낸 적도 여러 번이다.

 

늦은 밤 거실에서 줌 보면서 길위의청년학교 연구회 하는데 큰아이가 갑자기 동생 방에 들어가서 듣고 있는 인강내용부터 곧 다가올 중간고사에 공부 방법까지 쏟아낸다. 막내도 오랜만에 공부한다고 책상에서 책 펴고 있었는데 언니가 물 마시러 나왔다가 꼭 알려주고 싶었는지 갑자기 자기 방에 들어와서 이야기하니 듣기 싫어하는 표정이다. 큰애는 막내 표정과 말투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욱(?)하고 나왔다.

 

자기는 나름 시간 내서 진정을 가지고 자기 경험과 공부한 내용을 알려준 것인데 기분이 좋지 않다. 큰아이는 성적이 좋다. 매일 늦은 시간까지 공부한다고 책 펴놓고 문제 풀며 교과서를 달달 외고 있어서인지 시험 보는데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막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음악 듣고 침대에 누워서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두 아이 상황 지켜보다가 얼핏 내가 큰아이의 행동과 오버랩되는 것만 같다. 10대 꼰대가 된 듯.

 

몇달 전 모 강의장에서

 

꼰대의 정의는 모두 알겠지만 일단 자기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뜻한다. 내가 그런 것은 아닌가? 타자가 알고 싶어하지 않는데 자꾸 좋은 것이라고 주입하려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되기 싫어서 질문도 자주 하는데 또 질문을 많이 하면 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역이다.

 

상대방이 듣고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상황에서 내가 진정성을 가지고 강의하거나 설명할 때에도 내용이 빈약하거나 구태의연한 사고라면 자연스럽게 꼰대가 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상대가 듣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성을 가지고 훌륭한 지식과 지혜를 전하더라도 상대방이 듣고자 하는 의지가 없거나 다른 것을 하고 싶은데 교육하려고 할 때도 꼰대가 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상대방의 허락이 없으면 강요가 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할 때나 모임에서 피드백이나 프레젠테이션 등 그 어떤 때에도 상대가 들을 마음이 있고, 내용 또한 구태의연하지 않고 수준 있는 것이면 받아들인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냥 꼰대가 된다.

 

타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과정, 즉 교육이나 강의, 강연할 때는 단순히 내가 아는 어떤 지식이나 경험의 수준은 당연히 질적으로 좋은 내용이어야 한다. 이는 기본값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들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부터가 강의의 시작이다.

 

상대가 나의 강의를 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부터가 강의(교육)의 시작이다. 강의()장 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도 그렇다. 어쩌면 내가 가진 지식이나 경험, 지혜보다도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나 수용성이 그 강의()를 더욱 훌륭하게 해 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강의는 나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 방법은 무언가? 무한궤도다. 수준 높은 강연을 해야 하고, 수준 높은 책도 연구도 써 내야 한다. 현장에 활동도 사회에서 필요한 내용을 하면서 해석하고 나누어야 한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현장도 글도 연구도 지식도 강의까지 모두가 고리로 꿰어 있다. 그 안에서 상대의 신뢰는 커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