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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반장질의 역설

by 달그락달그락 2023. 4. 22.

어느 학교 오후 교무실. 담임교사가 반장을 불렀다.

 

반장, 너 가서 야자시간 떠드는 애들 이름 좀 적어 와라.”

 

그러자 반장이 얼굴을 붉히며 잠시 멈칫하더니 대꾸한다.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반장을 선생님이 뽑아 준 것도 아니고, 저를 반장으로 선출해 준 것은 우리 반의 학생들입니다. 반장은 반의 학생들이 공부와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대표성을 가진 위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의 프락치도 아니고 꼬봉도 아닌데요. 뒤에 앉아서 몰래 이름을 적어 오라고 하다니요? 선생님으로서 부당한 명령 같습니다. 이 말씀은 사과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반장이 몇이나 있을까? 반대로 떠든 친구뿐만 아니라 졸거나, 교사를 욕하는 친구들 이름까지 모두 적어가는 반장도 있겠지. 나는 이러한 고자질 하는 행위를 반장질이라고 칭했다.

 

반장질잘하는 학생에게 교사는 어떻게 대우해 줬나?

너 참 착하다. 인성이 좋구나. 생기부 등 걱정 말아라이런 말을 해줬을까? 아니면?

 

 

반장질 잘하는 학생이 법대를 졸업하고 국회의원, 장관을 한다면 이들의 본분인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 법을 만들고 행정, 정책을 수행할까? 아니면 자신에게 권력을 줄 수 있는 위에 한 명만 쳐다볼까?

 

반장질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본질은 없고 자신의 권력과 힘을 부여하는 한 사람만 바라보는 특징이 있다. 수년 전에 출판했던 <청소년자치이야기>에 썼던 글 중 일부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강연장에서 만난 교사들, 그리고 청소년지도사나 복지사, 상담사 등 대상으로 강의하다가 이런 이야기 해 주면서 “‘반장질잘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어디냐?”고 질문하면 대부분 답은 같았다.

 

교도소가 이분들의 답이었다. 이 글 읽는 사람들은 내가 어느 나라 이야기하는 줄 알겠지?

 

어제 인근의 교육청에서 교사들 대상으로 강의했다. 분위기도 좋았고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참여자분들의 능동성으로 즐거움도 컸다. 교육청에서 교육복지 총괄하는 분으로 오랜 후원자로 매우 신뢰하는 선생님이 요청해서 두말 안 하고 강의하러 갔다. 달그락 브로셔를 한 묶음 들고서.

 

몇 년 동안 서 선생님 얼굴도 뵙지 못해서 인사도 나눌 겸 찾아뵙고 좋았다. 강연장 가득 메운 교사들도 분위기 좋았고.

 

지역 청소년활동주제로 청소년의 역량, 진로와 사회적 가치 실현 등 연결해서 강의하다가 반장질 일화가 떠올라 위에 내용 설명하고 반장질 잘하는 이가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어딘가?”라는 질문을 드렸다. 당연히 교사들이 교도소라는 답이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산과는 전혀 다른 답이 나왔다.

 

어떤 선생님 한 분이 대통령이라고 했다. 한 대 뒤통수 맞은 듯했다.

 

강의 스토리보드를 다시 만져야겠다. 반장질 잘하면 결국은 망한다는 게 논리였는데, 대통령이라는 말 한마디에 생각이 많아졌다. 돌아오면서 잘 생각해 보니 더 복잡해졌다. 반장질도 잘했지만 결국은 반장질을 넘어서 자신의 주군의 등에 칼을 꽂으니 교도소가 아닌 최고 권력에 오른 것은 아닌가? 거기에 상당수 국민은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과 주변 권력자들을 많이도 잡아들이고 교도소에 보낸 분이 후보가 되자 그를 대통령으로 지지 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져.

 

우리 공교육은 현재 반장질 잘하는 신노예(그냥 만든 말이다)를 만들어 내는 학벌 교육이다. 교육이 개인의 소질과 유능함을 개발하며 사회적으로 연대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기재로서 작용하는 게 아닌 철저히 극소수 지배자의 도구로써 활용되고 있다. 인격의 도야민주시민인류공영의 발전, 홍익인간의 가치 등 교육기본법의 기본 이념에 충실한 교육이 아닌 무한경쟁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리고 있고 이를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전에 이런 글을 쓰면서 마무리했었는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결론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분이 저와 같이 선생질하는 사람이라면 반장질에 대해서 교사나 청소년지도자 등 만나면 어떻게 결론을 내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