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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및 관점/칼럼

[전북일보] 나는 꼰대일까?

by 달그락달그락 2023. 2. 22.

쇼츠릴스보는 것을 좋아하는 막내에게 한마디 했다. “네가 하루 10시간 스마트폰 해도 좋은데 조금 의미 있는 것을 하면 어떠니?”, 그러자 아빠, 뭘 할 때 모두 의미가 있어야 해?”라며 되묻는다. “아니 모두 의미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긴 시간 뭘 하는데 의미 없이 하는 것은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러지. 차라리 영화나 다큐를 보면 어떠니? 웹소설도 좋다.” 이제 중학생 되는 아이가 알았떠.”라고 대답. 반응이 떨떠름해 보였다.

 

내가 국민학생 때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든 딱지부터, 문구점이나 동네 구멍가게에서 구입한 만화 캐릭터 그려져 있는 딱지를 친구들과 게임 해서 열심히 모으는 게 일이었다. 어느 때인가 딱지를 많이 땄다. 그 순간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오락실 알게 되어서 열심히도 다녔다. 게임기에 50원 넣으면 시간 가는지 모르고 하게 됐다. 친구들이 뒤에 서서 구경할 정도가 됐다. 그럴 만도 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에 오락실 들렀고 방과 후에도 찾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허무했고,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지치기와 오락실 게임과 같은 일은 방법과 내용만 달라졌을 뿐 나이 먹어서도 계속 반복됐다. 무언가 재미나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허무해지고 의미 없는 일의 반복이 삶으로 이어졌다.

 

출처. 중앙일보. [그래픽 Talk] ‘꼰대자가진단’ 해보니…‘멘토’와 ‘꼰대’는 한 끗 차이

 

꼰대는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찾아 보니 10대와 20대 꼰대도 넘치는 세상이다. 나 또한 꼰대 짓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닌지? 강의실, 회의실이 주 무대였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교사나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등 청소년과 관계된 사람들 대상으로 강의를 수단으로 내 경험이나 지식이 모두인 것처럼 주장한 일들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의 현장은 지구 안에 나만이 아는 먼지 같은 아주 작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내에게 전하는 내 이야기가 먹힐지 알 수 있다. 내 말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릴스 보다가 상상력이 향상되고 창의력이 넘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허무함을 알게 되고 자신도 깨닫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지 누가 알까?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보는 것에 문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또 한 면에 이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다. 중요한 것은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인데, 조절 능력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나? 그렇지 않을 거다. 돌아보니 수십 년 전에 열심을 냈던 딱지와 오락실 등이 마냥 허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꼰대 짓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강연이나 회의장에서 진정성 다해 어떤 본질에 대해 가슴으로 만난 일을 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순간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타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말의 중심에 진실이 있다면 이미 꼰대는 아닌 게 된다. 다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꼰대라고 하면 꼰대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시 되고 이후 그가 복이 될 수 있도록 제안이나 가치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배움이 크다는 것. 살다 보니 그 정도는 알겠다.

 

써 놓고 보니 막내에게 배움이 컸다. 나는 꼰대일까?

 

전북일보 칼럼 원문

 

나는 꼰대일까?

‘쇼츠’나 ‘릴스’ 보는 것을 좋아하는 막내에게 한마디 했다. “네가 하루 10시간 스마트폰 해도 좋은데 조금 의미 있는 것을 하면 어떠니?”, 그러자 “아빠, 뭘 할 때 모두 의미가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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