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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영화와 책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by 달그락달그락 2022. 12. 19.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 주소서. 내가 갈피를 넘기던 책, 내가 쓰던 차가운 컴퓨터... 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어요.”

 

사형수도 형장으로 가면서 물웅덩이를 폴짝 피해 가요. 생명이 그래요. 흉악범도 죽을 때는 착하게 죽어요. 역설적으로 죽음이 구원이에요.”

 

그러니 죽을 때까지 최악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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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는데 눈물이 핑 돌아.

 

대천에 놀러 갔다가 새벽에 아이들 재우고 다른 천막에 가서 문학청년들과 신나게 떠들 때 컴컴한 바다에 4살짜리 딸아이가 아빠를 찾아 헤맬 때를 이야기하면서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분.

 

강의하고 나오는데 한겨울에 추워 벌벌 떨면서 추위에 얼굴이 파래지면서도 기다리는 여학생이 선생님 그래도 돌아가시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는 이 장면. 어머니처럼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라고 하지 않고 학생 그게 뭔 소린가? 죽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내 맘대로 하나?”라고 이야기했던 그때가 너무 후회된다고 하셨어.

 

이 순간에 눈물이.

 

쉬는 날 월요일.

 

이번 주 중요한 발표가 있다. 준비하다가 머리 아파서 책 꺼냈다. 커피도 두 잔째.

 

 

커피를 내리려고 컵 위에 드리퍼 올리고 원두 갈아 얹힌 후 물을 내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매번 불안과 강박에 찌들어 사는데 요즘 가끔 이런 일이 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기분 좋은 때.

 

 

베란다에 들어오는 맑은 햇빛과 함께 조금씩 새어 나오는 커피 향의 은은함이 좋았다. 그제 늦은 밤 곧 중학생 되는 막내가 자기 책상 정리하다가 아빠 이거 이전에 내가 쓴 건데 여기 있네. 헤헤~”라면서 준 종이 몇 장이 독서대 앞에 놓여 있었다. 아이가 초등 3학년 때 나 아파서 헤롱 거릴 때 준 몇 장 종이에 쓴 웃기는(?) 시와 건강을 위해서라면서 만들어 준 프로젝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마지막 인터뷰에서 생의 진실이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이 말씀에 공감이 크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알고 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 선물이었음을 알고 살아갈 때 가능한 일 같아.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p.294

 

우리의 모든 것은 다시금 그 중심으로 돌아간다. 생명은 그렇게 죽음과 연결되어 수평의 중심을 유지하고 있다.

 

창가에 햇살이 좋은 날이다.